“치밀하게 계획한 도발”…미, 대북 강경대응 불가피

입력 2022-03-25 09:16 수정 2022-03-25 10:58

북한이 ‘레드라인’으로 간주해 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발사하면서 한반도 안보위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특히 이번 ICBM은 미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직접적 위협으로 평가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조건 없는 대화’만 강조한 그간의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도발→제재 강화→재도발’로 이어지는 과거의 긴장 위기 공식이 재현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 책임 물을 것”

조 바이든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북한의 ICBM 시험 발사를 강력히 규탄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백악관은 “두 정상은 외교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고, 북한에 책임을 묻기 위해 계속해서 함께 협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도 요구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관련한 민감한 물질을 조달한 혐의로 북한 제2자연과학원과 북한 국적자 리성철 인민보안성 참사를 신규 제재 명단에 올렸다. 러시아의 아르디스 그룹 등 2개 기관과 러시아 국적자 1명도 같은 혐의로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성명에서 “이번 조치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 능력을 억지하려는 조치의 일환”이라며 “그들은 국제무대에서 무기 확산자로서 러시아의 부정적 역할을 부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글렌 벤허크 미국 북부사령관은 상원 군사위 답변에서 “불량 국가들의 ICBM 위협에 맞서 미국을 지키는 것은 절대적 우선순위이고 통합 억지의 핵심 요소”라며 “북한의 향상된 전략 무기 개발에 맞서기 위해서는 차세대 전투 요격기를 적시 혹은 조기에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미국 방어) 역량을 넘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며 “이 때문에 차세대 요격기가 제때 혹은 이보다 빨리 배치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계산된 도발

전문가들은 북한이 우크라이나 사태, 한국의 정권교체 등 지정학적 혼란의 시기를 틈타 이번 도발을 계획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우드로윌슨센터의 수미 테리 한국연구센터 센터장은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 기고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핵무기를 확장하려는 김정은의 결의를 배가시켰다”며 “김정은에게 우크라이나 사태는 핵무기를 포기하는 국가는 취약해지고, 지도자가 축출과 살해 위험에 직면한다는 교훈을 강화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김정은은 우크라이나가 1994년 핵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러시아가 손쉽게 침공을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며 “북한이 계속해서 미사일 실험과 핵실험 등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테리 센터장은 북한이 도발을 지속할 것이라는 근거로 윤석열 당선인의 강경 대북 정책 신호, 김정은 체제 10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대러 제재로 집중된 서방 관심 등을 이유로 꼽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가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상황”이라며 “(유엔 안보리 결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세력 간의 관계 악화와 긴장 고조를 이용할 기회를 감지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의 다르시 드라우트 연구원도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몰두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를 주시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추가 제재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발사 시기는 우연이 아니다”고 말했다.

강경 대응 불가피 전망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강경 노선으로 전환하며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테리 센터장은 “바이든 행정부는 조건 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지만,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실패 이후 미국과의 대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며 “북한이 올해 무기 시험발사로 위협 수준을 높일 때 미국 정부가 대응할 좋은 선택지가 거의 없다”고 우려했다.

테리 센터장은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유일한 현실적 선택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약속을 장기적 목표로 유지하고, 단기 및 중기적으로는 위협을 제한하기 위해 제재와 억지라는 보다 실용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NK뉴스 설립자 채드 오캐럴도 “한·미는 내달 예정된 연합훈련 등 북한을 억지하기 위한 군사 훈련을 강화할 것으로 보이고, 이는 김정은이 도발 행위를 정당화하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결론적으로 북한이 핵실험 재개에 나설 것이라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소극적 대외 정책이 안보위기를 키웠다’는 공화당 공세도 부담이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는 “김정은은 (미국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물에서 피 냄새를 맡고 있다”며 “(강력한 대북 제재를 시행했던) 트럼프 행정부 때와 같은 힘을 그에게 다시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짐 인호프 상원의원, 마이크 로저스 하원의원 등 상·하원의 국방위 소속 공화당 의원 40명은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 등 위협을 언급하며 2023회계연도 국방비 예산 5% 증액을 요구하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그린 국제위기그룹 수석 분석가는 “러시아 및 중국과의 악화된 미국 관계가 북한을 대담하게 했다. 이 지역은 불안정한 상황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발사는 수년간 빈사 상태에 빠진 외교가 끝나고 새로운 대결이 시작됐음을 표시한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