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업계에 규제가 도입될 때마다 주요 거래소 간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새로운 ‘게임의 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향후 성패를 좌우할 수 있어서다. 제도 변화를 앞두고 경쟁사와의 협약을 일방적으로 깨뜨리거나 언론에 비판 자료를 뿌리는 일도 벌어진다.
24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3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으로 도입, 25일부터 시행되는 트래블룰을 두고 거래소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자금세탁방지 등을 위해 암호화폐 송수신 정보를 기록하는 트래블룰은 코인 투자 및 송금 양태를 바꿀 강력한 규제책이다.
당초 특금법 개정 이후 주요 거래소인 업비트(두나무)와 빗썸, 코인원, 코빗 4사는 트래블룰 공동 대응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하지만 업비트는 MOU 한 달 만인 지난해 7월 일방적으로 합작법인 탈퇴를 선언했다. 자회사 람다256을 통해 자체 솔루션을 만들기로 방향을 튼 것이다. 남은 3사는 ‘코드’를 설립해 공동 솔루션을 만들었다.
찝찝하게 갈라선 양 측의 신경전은 계속됐다. 코드는 블록체인 기술을, 람다256의 베리파이바스프(VV)는 분산 프로토콜 연계 방식을 택했다. 어느 솔루션의 기술력이 나은지를 두고 양측 회사 대표가 소셜미디어에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트래블룰 도입 전 마무리하기로 했던 코드와 VV의 연동은 결국 다음 달 24일로 미뤄졌다.
후발 3개업체들은 선두주자 업비트에 견제구를 날리기도 한다. 국내 시장의 70~80%를 차지한 업비트가 실명계좌를 맺은 케이뱅크의 느슨한 규제책 등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는 불만이 크다. 일부 거래소는 업비트의 독과점·특혜 등을 지적하는 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가상자산의 제도화를 공언한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새로운 규제가 생길 때마다 잡음이 일 공산이 크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다툼이 과열돼 금융당국이 자제를 요청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