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관례 깨고 윤석열과 통화…“한·중 관계 관리 신호”

입력 2022-03-24 16:45 수정 2022-03-24 19:15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 천막 기자실을 방문해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첫 전화 통화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이 다른 나라 정상 당선인이 정식 취임하기 전 통화를 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이튿날인 지난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1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각각 통화했다. 이로써 대통령 당선 보름 만에 한반도 주변 4강 중 러시아를 제외한 3국 정상과 상견례를 하게 됐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24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브리핑에서 “윤 당선인과 시 주석의 통화가 이번주 내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과 시 주석간 통화 조율은 인수위와 주한 중국 대사관 채널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 시점은 25일 오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취임한 시 주석은 그간 외국 정상이 새로 선출되거나 바뀌면 결과가 확정된 시점에 축전을 먼저 보내고 전화 통화는 취임식 이후에 진행했다. 시 주석은 지난 11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통해 윤 당선인에게 축전을 전달했고 전화 통화는 오는 5월 대통령 취임 뒤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5년 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곧바로 시 주석과 통화했던 사례가 있지만 당시 문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 없이 곧바로 취임해 당선인이 아닌 대통령 신분이었다. 외교 소식통은 “윤 당선인과 시 주석의 전화 통화는 파격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중국 정부가 관행을 깨고 윤 당선인과의 통화에 의욕을 보인 건 한·중 관계를 관리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당선인은 선거 기간 한·미동맹 및 한·일 안보협력 강화, 사드(THAAD) 추가 배치, 미국 주도의 대중 포위망인 쿼드(Quad)와의 협력 확대 등을 공약했다. 중국 관련 이슈에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중국 관영 매체는 한국의 새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보다 대미 관계를 우선시하는 외교 정책을 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으로선 새 정부의 대외 정책 큰 틀을 짜는 인수위와 직접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게다가 중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국제사회의 전방위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를 두둔했다가 함께 고립될 처지에 놓였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민간인 희생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중국에 대한 비판이 날로 커지고 있다. 파키스탄 등 일부 국가가 ‘제재를 통한 문제 해결에 반대한다’는 중국 입장에 동조하고 있지만 주요 국가 가운데 이렇다 할 우군은 없는 게 현실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정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무력 시위 강도를 높이던 북한은 이날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며 레드라인을 넘어섰다. 2018년 4월 선언한 핵실험·ICBM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파기한 것이다. 김 대변인은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높여가는 상황에서 아시아·태평양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긴밀한 공조, 윤석열 정부가 이뤄나갈 한·중 관계 등을 고려해 통화 필요성을 구상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강력한 코로나19 방역 정책 때문에 당선인 특사가 방중해 시 주석을 만나기 쉽지 않은 상황도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