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반러시아 정서가 확산하는 가운데 유니클로 등 일본 기업의 ‘탈러시아’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러시아 제재에 미온적이던 프랑스 기업들도 뒤늦게 러시아에서 발을 빼고 있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기업 37곳이 러시아 내 사업 중단이나 축소를 발표했다. 닛케이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에 따라 기업들이 러시아를 뺀 글로벌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 조사업체 데이코쿠데이터뱅크 집계에 의하면 러시아에 진출한 일본 주요 기업 168개 사 가운데 이달 15일 기준으로 약 20%가 사업 정지·중단을 결정했다. 이들 기업들은 주재원을 귀국시키거나 원자재 조달처를 러시아 이외의 다른 나라로 바꾸는 등 공급망을 개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타이어 제조회사 ‘브리지스톤’은 러시아 등에서 타이어 재료를 확보해 유럽 공장 등에 공급해왔으나 현재 공급망을 재검토 중이다.
건설기계 제조사 ‘히타치켄키’도 그간 독립국가연합(CIS)에 공급하는 제품을 러시아를 경유해 출하했으나 러시아 공장의 부품 조달이 정체되고 물류 혼란이 생기면서 경로 변경을 검토하기로 했다.
러시아 내 최대 담배 생산자이자 현지에 공장 4개를 가동 중인 ‘일본담배산업’(JT)의 데라바타케 마사미치 사장도 전날 열린 주주총회에서 “사업 환경이 전례 없이 엄중하다”며 “대폭 개선하지 않는 한 제조를 일시 정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패션브랜드 유니클로 사업을 하는 패스트리테일링도 이보다 앞서 러시아 사업을 일시 중단했다. 이달 초 패스트리테일링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의복은 생활필수품”이라며 “러시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생활할 권리가 있다”고 러시아 사업 지속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으나 비판이 이어지자 결국 방침을 변경했다.
다른 서방 국가에 비해 러시아 제재에 미온적이던 프랑스 기업들도 뒤늦게 러시아에서 사업을 접고 있다. 프랑스 자동차 르노는 전날 보도 자료를 내고 이날부로 모스크바에 있는 르노 그룹 제조공장 가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르노의 이번 결정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날 프랑스 상·하원 화상 연설에서 르노, 오샹, 르루아 메를랭 등 프랑스 기업들 이름을 언급한 뒤 러시아 시장에서 즉각 철수해야 한다고 촉구한 뒤 나왔다.
르노는 러시아에서 합작법인 아브토바즈의 지분 68%를 보유하고 있다. 아브토바즈는 러시아 국민차 ‘라다’를 생산하며 르노 매출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르노는 이번 모스크바 공장 중단으로 올해 영업이익률이 종전 4%에서 3%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프랑스 석유회사 토탈에너지스와 자산규모 세계 5위의 프랑스 은행 크레디아그리콜도 러시아에서 사업과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난 21일에는 프랑스 대형은행 B&P파리바도 철수를 선언했다. 이 밖에도 월스트리트저널은 다국적 기업 400여곳이 러시아에서 발을 뺐다고 전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