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대 수익을 낸 4대 시중은행이 지방 지점을 줄이는 데 한창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금융 소비자의 ‘디지털 소외’를 걱정해야 하는 금융당국은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 있다.
국민일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의 전국 지점 수는 총 3079곳으로 전년 3304곳 대비 225곳(6.8%) 감소했다. 신한은행이 860곳에서 784곳으로 76곳을, KB국민은행이 972곳에서 914곳으로 58곳을, 우리은행이 821곳에서 768곳으로 53곳을, 하나은행이 651곳에서 613곳으로 38곳을 감축했다.
지역별 지점 증감 현황을 들여다보면 결과는 조금 달라진다. 지난 한 해 동안 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나머지 14개 시도 내 지점 수를 가장 많이 줄인 곳은 KB국민은행이다. 325곳에서 292곳으로 33곳을 감축했다. 최근 5년으로 시계(視界)를 넓혀봐도 결과는 비슷하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KB국민은행은 총 86곳의 비수도권 지점을 줄여 나머지 3곳을 압도했다. 이 기간 우리은행은 30곳, 하나은행은 29곳, 신한은행은 25곳을 감축했다.
4대 시중은행의 비수도권 지점 감소세는 최근 들어 더 강해졌다. 4대 시중은행의 비수도권 지점은 2018년에는 11곳, 2019년에는 6곳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2020년에는 84곳, 지난해에는 69곳이나 줄었다.
시중은행은 한국 사회의 디지털 전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한 대응책이라고 항변한다. 스마트폰 이용 확대로 지점을 찾는 고객이 대폭 감소해 과거처럼 많은 점포를 운영하는 것은 비효율이라는 얘기다. 지점을 통폐합하는 대신 애플리케이션 사용성을 개선하는 등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금감원은 이런 은행권 움직임에 아쉬움을 표하는 상황이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4대 시중은행이 단기 성과에 매도돼 지점 줄이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100세 시대가 도래해 노인은 계속 늘어나는데 아쉬운 부분”이라면서 “특히 전국에 지점을 많이 뒀던 KB국민은행이 감축하는 데 적극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은행권의 무리한 지점 통폐합을 제지하고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한국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건전성 문제나 시장 질서를 저해하는 행위가 생길 때 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지점 수를 줄여 비용을 아끼겠다는 판단은 주주가 따로 존재하는 민간 기업으로서 내릴 수 있는 경영상 판단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사상 최대 실적을 꾸준히 경신하고 있는 4대 시중은행이 지점 줄이기에 매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 한 해 은행권이 이자이익으로만 46조원을 벌어들였다는 집계가 나오고, 4대 시중은행 임직원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알려진 바 있다. 최근에는 4대 시중은행을 아래에 둔 금융지주가 분기·중간 배당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4대 시중은행이 지점을 감축하는 속도대로라면 10년 뒤에는 인터넷은행이 돼 있을 것”이라면서 “‘주주 이익 확대’를 외치는 4대 시중은행이 금융 소비자 권익 보호에는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