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싫어요” 울부짖던 아이…마리우폴 폭격 그날 현장

입력 2022-03-24 00:03 수정 2022-03-24 00:03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의 포격에 피해를 입은 아파트의 주민으로 보이는 여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 어머니가 무너진 잔해 속에서 아이를 찾고 있었고, 아이는 죽고 싶지 않다며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러시아군의 마리우폴 극장 폭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블라디슬라프(27)가 전한 ‘그날’의 기억은 처참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폭격이 떨어진 마리우폴 극장은 1000여명의 민간인이 대피해 있던 피란민 거처이기도 했다. 아수라장이 된 극장에서 일부는 탈출하거나 시 당국에 구조됐다. BBC가 22일 그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마리우폴 극장에 닥친 폭격…5세 아이의 절규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극장 건물이 전날 러시아군 폭격을 받아 크게 파손되고 입구에는 잔해가 쌓여 있다. AP 연합뉴스

BBC가 만난 생존자 마리아 로디오노바(27)는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열흘째 마리우폴 극장에서 피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폭격 당시 “그날도 어김없이 러시아 비행기가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극장 내 객석에서 생활하던 그는 짐과 강아지를 둔 채 오전 10시 물 배급을 받으러 극장 정문을 향했다. 폭격이 극장을 강타한 건 그때였다. 배급을 받기 위해 줄 서 있었기에 그는 폭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극장은 금세 아수라장이 됐다. 폭발은 건물 전체를 흔들었고 곳곳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으며 다친 사람이 속출했다고 마리아는 전했다. 그는 자신이 마리우폴 적십자사에서 봉사해 왔지만, 폭격 당시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블라디슬라프가 친구들을 찾기 위해 건물에 뛰어 들어갔다 잔해 속에 파묻혀 절규하는 아이와 어머니를 본 것도 이때쯤이었다. 그가 극장에 들어갔을 때 이미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이를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깔려 있는 아이도 보았지만, 폭격의 잔해 때문에 그는 건물 안으로 더 들어가지 못했다고 전했다.

시 당국은 하루가 지난 뒤 현장에서 130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후로 추가적인 구조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마리아는 자신과 같은 곳에서 생활하던 30여명의 사람들이 아마 폭격에 휩싸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아는 현재 마리우폴 시를 빠져 나온 상태다. 그는 하루에 20㎞ 정도를 걸어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베르단스크에서 지내고 있지만 그의 할머니는 마리우폴에 남았다. 마리아는 “여기(마리우폴)가 나의 집이고, 나는 아무데도 안 간다”며 마리우폴에 남은 할머니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공습 이틀 전인 지난 14일 미국 상업위성업체 맥사가 촬영한 마리우폴극장 모습. 건물 주변에 러시아어로 어린이가 있음을 알리는 '어린이들'(дети)'이란 흰색 글씨가 보인다. AP 연합뉴스

풍전등화, 마리우폴의 운명은?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병원 밖에 러시아군 포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이 천으로 덮인 채 방치돼 있다. AP 연합뉴스

마리우폴 극장서 이 같은 폭격 피해가 속출했지만, 러시아 측은 극장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민간인 거주지 폭격이 애초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BBC 등 외신들은 폭격 위치가 정확히 극장 중앙에 떨어졌다는 점을 들어 러시아군의 의도적인 조준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마리우폴 극장 폭격 뒤 마리우폴에 21일 오전까지 항복하라는 ‘최후통첩’도 보냈다. 러시아 국가국방관리센터 소장인 미하일 미진체프 대령은 지난 20일 브리핑에서 “끔찍한 인도적 재앙이 마리우폴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무기를 내려놓는다면 안전하게 마리우폴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는 그러나 “항복의 여지는 없다”며 러시아의 제안을 즉각 거부했다.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무기를 버리거나 항복할 여지는 결코 없다”며 “이 사실을 이미 러시아 측에 알렸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군의 마리우폴 공격은 전쟁범죄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항복을 거부함에 따라 마리우폴에는 러시아군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군은 23일 현재까지 3주째 마리우폴을 포위하고 있다. 마리우폴 극장 폭격 이후에도 하루 50~100번가량의 포격이 이어졌다고 CNN 등 외신은 타전했다. 시 당국은 도시 주택 지역의 80%가량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2일 자신의 SNS를 통해 7000여명의 시민들이 마리우폴을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10만여명이 마리우폴에 남아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러시아군의 포위로 음식과 물도 거의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서민철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