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 대비 일본 엔화 가치가 6년여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엔화는 달러화, 스위스 프랑화와 함께 금융 위기, 지정학적 위험 때마다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통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기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따른 금융시장의 혼란과 에너지 가격 상승 국면에서 엔화 가치는 우리나라의 원화보다 가파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원·엔 환율은 23일 오후 4시5분 현재 100엔당 4.97원(0.49%) 하락한 1004.01원을 가리키고 있다. 같은 시간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21.06엔으로 치솟았다.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는 2016년 2월 이후 6년 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4.3원 내린 1213.8원에 마감됐다.
세계적인 위기에서 엔화를 사두면 안전하다는 인식도 지금의 금융시장에선 통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연준의 금리 인상 여파를 회피할 헤지(hedge) 수단으로 엔화를 사들이면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상황 장기화와 유가 불안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 위험,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우려를 고려하면 엔화 약세 현상을 안전자산 선호 현상 약화로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미국과 일본 간 통화정책 차별화, 일본 정부의 추가 경기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빅스텝(금리의 높은 인상·인하율)’ 언급이 시중금리 급등을 촉발하면서 엔화 약세를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이어 “엔화가 안전자산을 대변하는 통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엔화는 2004년과 2015년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 초기 국면에서도 최근처럼 약세를 보였다. 달러화의 일방적 독주만 나타나는 형국”이라고 강조했다.
엔화 약세는 원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 연구원은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는 당분간 원화 약세 심리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엔·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더 오르면 원·달러 환율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