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은총재 지명…靑 “尹측 의견 들어” 尹 “협의 없어”

입력 2022-03-23 13:50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새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이창용(사진)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을 지명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새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했다. 청와대는 인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지만 당선인 측은 협의가 없었다고 맞서며 신경전을 벌였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후보자 지명 사실을 발표했다. 이 후보자는 인창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 등을 두루 역임했다.

박 수석은 “이 후보자는 국내·국제경제 및 금융·통화 이론과 정책, 실무를 겸비했다”며 “주변 신망도 두텁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재정 및 금융 전반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경험, 글로벌 네트워크와 감각을 바탕으로 국내·외 경제·금융 상황에 대응하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통화신용정책으로 물가와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자는 한국은행법 33조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와 국회 인사청문회 등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문 대통령이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총재 임기는 4년으로 한 차례만 연임할 수 있다. 지난 8년 동안 우리나라의 통화신용정책을 진두지휘한 현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달 말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한은 총재 후보자 지명이 문 대통령과 당선인 간 회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지난 16일 회동하기로 했다가 현재까지 만나지 않고 있다. 그 주요 이유가 임기 말인 현 정부 인사권 행사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감사원 감사위원,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등의 인사를 앞둔 상황에서 청와대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문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윤 당선인 측은 이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한은 총재 후보자 지명에 대해 “총재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어서 내정자를 발표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한은 총재는 당연직 금융통화위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돼 있다”며 “어느 정부가 지명했느냐와 관계없이 이달 31일 임기 만료가 도래하므로 임명 절차 등을 고려할 때 후임 인선 작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입장은 이번 인사에 사실상 윤 당선인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돼 있다는 뜻으로,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견해차를 어느 정도 해소해 회동을 앞당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문 대통령도 이날 오전 참모회의에서 ‘언제든지, 조건 없이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밝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이번 인선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대립 구도를 전환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장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의 새 한은총재 후보 지명 사실이 알려진 후 대변인실 공지를 통해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고 맞섰다.

일각에서는 회동 논의 공전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청와대와 당선인 측은 한국은행 총재 인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감사원 감사위원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어왔다. 문 대통령이 용산 집무실 이전에 제동을 건 상황에서 한국은행 총재 인선까지 강행하면서, 청와대와 당선인 측 간의 갈등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