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장 대치… 靑 “일단 만나자” 尹 “성과 없인 못 만나”

입력 2022-03-23 05:42 수정 2022-03-23 10:21
문재인 대통령(왼쪽 사진)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청와대 제공,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9일 대선 이후 2주가 지났지만 아직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역대 가장 오랜 기간 만나지 못한 경우다.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이 회동까지 가장 오래 걸렸던 사례는 9일이 걸린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의 만찬, 2012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의 회동이다.

신구 권력 갈등은 속절없는 대치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 측에 “일단 만나서 대화하자”는 입장인 반면 윤 당선인 측은 “성과 없이 무작정 만날 수는 없다”며 맞서는 형국이다.

靑 “허심탄회하게 만나자… 늘 열려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2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 나와 ‘이견이 노출될 수 있지만 당선인과 문 대통령이 빨리 만나야 하지 않느냐’는 진행자 질문에 “실무라인서 다 결론이 날 수는 없다”며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허심탄회하게 만나자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대통령이 말씀하신 대로 조율 없이 조건 없이 허심탄회하게 배석자 없이 그렇게 만나자”며 “청와대는 늘 열려 있다는 말의 취지에 다 담겨 있으니 그렇게 국민께 약속을 드릴 수 있도록 잘 협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윤 당선인과 회동에 대해 “청와대의 문은 늘 열려 있다”며 “무슨 조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말했다.

박 수석은 이날 오전 출연한 여러 라디오 방송에서 청와대가 ‘용산 집무실 이전’에 제동을 걸면서 정국이 급랭한 것에 대해서는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가 두 분이 만나는 회동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며 회동과 연결시켜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보 공백 해소를 전제로 “당장 내일이라도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예비비 처리를 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고 했다. 인사권 행사 문제에 대해서도 “인사 권한은 (현) 대통령이 사인 권한을 갖고 있지만 (당선인과) 협의를 하지 않겠느냐”며 회동을 통해 해결할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尹측 불만 고조… ‘용산 집무실·인사권 문제’ 평행선
윤 당선인 측 김은혜 대변인도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회동 가능성에 대해 “늘 열려 있다. 굳이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면서 결론을 예단하진 않겠다”며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인수위원회 내부에서는 청와대에 대한 불만이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현 정부와 윤 당선인 측은 용산 집무실 이전 문제 이외에도 감사원 감사위원 인선을 둘러싼 대통령 인사권 행사 문제, 북한 방사포 발사와 관련한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 문제 등 여러 쟁점에서 평행선을 달리며 대립하고 있다.

우선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의 ‘첫 행보’인 용산 집무실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회동 협의가 꼬였다. 청와대는 21일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갑작스러운 이전은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튿날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국정에는 작은 공백도 있을 수 없다. 국가안보와 국민경제, 국민안전은 한순간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 측에서는 청와대가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 승인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상황인 만큼 논의 진전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의 입장을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성과 없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만나는 건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사권 행사 문제도 암초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 측이 감사위원 두 자리를 비롯한 한국은행 총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등 네 자리에 대해 ‘인사동결’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러면서 조건 없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만나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양측 실무자인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지난 21일 만나 실무협의를 재개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총재의 경우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 내정설이 나오는 등 조금씩 거리가 좁혀졌지만 감사위원 2석에 대해서는 끝내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北 방사포, ‘9·19합의’ 위반 여부로 또 갈등
최근에는 지난 20일 북한의 방사포 발사를 두고 새로운 갈등이 생겼다. 윤 당선인이 22일 인수위 회의에서 “(북한 도발이) 올해만 해도 11번째인데, 방사포는 지금 처음 아니냐”며 “9·19 (군사합의) 위반 아닌가. 명확한 위반”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서다.

이 발언이 알려진 뒤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욱 국방부 장관은 ‘북한 방사포가 9·19 군사합의 파기냐’는 질의가 나오자 “합의 위반이 아니다”고 반박 취지로 발언했다. 9·19 군사합의상 지역 범위 내보다 훨씬 북쪽을 향해 발사한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에 윤 당선인 측은 “북한 감싸기”라고 다시 반박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새해 들어 이미 10차례나 미사일 발사를 한 상태에서 방사포를 발사했으므로 긴장고조 의도가 명백해 보인다”며 “방사포 발사 장소와 낙하지점이 명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9·19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북한 감싸기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