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폭발음이 들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지하에 대피한 주민 70명을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시켰고 고아원에 있던 300여명의 아이들도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병원에 도시락을 배달하고 빈민가에 음식도 제공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아나톨리 쿠시니르 목사가 보내온 편지엔 지난 17, 18일 이틀간 일어난 일들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러시아가 침공하기 전까지 그는 우크라이나 복음화를 위한 초교파 단체 POKLIK협회를 이끌었다. 수도인 키이우(키예프)에 본부가 있는 이 단체는 2000개 이상의 지역교회와 함께 전도 운동을 펼쳐왔다.
쿠시니르 목사는 22일 왓츠앱 통화에서 “전도용 인쇄물을 만들어 12년 간 매년 300만~900만 가구에 배포하는 사역을 했다”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는 침례교 오순절은 물론 정교회와도 혐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 침공 이후 쿠시니르 목사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지난 3주간 이동한 거리가 7000㎞”라며 “(오늘은) 리비우에 있고 우크라이나 최서단인 자카르파타주로 이동했다가 내일은 리우네에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14명의 협회 스태프들은 현재 키이우는 물론 자카르파타주, 흐멜니치키주, 리우네 등에 흩어져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돕고 있다. 국경을 넘어 그의 아내는 슬로바키아, 또 다른 스태프는 헝가리 이탈리아에서 협조하고 있다.
지난 17일, 18일 이틀간 사역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쿠시니르 목사는 우크라이나 중서부 크멜니츠키주에서 감자 통조림과 에너지바 등 긴급 구호식품 20t을 실은 차량을 끌고 키이우시로 향했다. 음식들은 루마니아 국경을 넘어 들어왔다. 차량은 360㎞ 거리를 달려 키이우시 필라델피아복음주의교회에 도착했다. 필라델피아교회는 현재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피란을 돕고 식량을 공급하는 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
쿠시니르 목사는 “우리가 도착한 날에도 키이우시 외곽 지역교회에서 음식을 받아가기 위해 왔다”고 전했다.
음식 배송에 이어 할 일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송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인도주의적 호송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2대의 버스와 5대의 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날 아침 5대의 밴은 70여명의 사람을 차량에 태워 러시아 포격이 덜한 서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 사람들은 러시아 폭격을 피해 트럭을 타고 필라델피아교회에 와 며칠 동안 교회 지하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쿠시니르 목사는 “이들은 우크라이나 서부의 다른 도시로 대피시켰다”면서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버스 2대로 지토미르 지역의 보육원에 있는 300명의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지토미르는 키이우시에서 서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지만 현재 도로가 파괴돼 접근이 어려운 상태다. 지토미르로 향하는 길목에 주둔한 러시아군은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 위협하는 곳이라는 게 쿠시니르 목사의 설명이다.
버스와 밴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이동을 돕는 동안 쿠시니르 목사는 키이우시 내 병원에 음식을 배달했다.
쿠시니르 목사는 “현재 병원은 의료진이 24시간 상주하며 부상자 치료를 전담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용품 음식 등 모든 게 부족한 상황”이라며 “필라델피아교회에선 음식을 만들어 지역 병원에 가져다 주고 있다. 이날도 우리는 600개 정도의 따뜻한 도시락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키이우시내 빈민가인 비트리아니호리 지역도 찾았다.
쿠시니르 목사는 “러시아 침공 전에도 지역 교회에서 매일 아침 6시마다 주민들에게 500인분의 식사를 제공했으며 우리는 그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며 “그들은 폭격을 피해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다. 이동할 돈이 없는 데다 대부분 고령이거나 병 든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사역을 하는 와중에도 러시아군의 공격은 계속됐다. 피란민들을 실은 차량들이 떠나기 직전인 18일 오전에도 공습 사이렌이 울린 뒤 공중에서 폭발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쿠시니르 목사는 “우리 군의 방공 시스템이 러시아 로켓을 격추하는 소리로 들렸다. 이날 아침 8시경 교회 건물을 뒤흔드는 폭발 소리가 들렸고 벽 모서리에 금이 갔다”면서 “그럼에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흩어지거나 숨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교회 근처 공립학교와 오래된 아파트 사이에 로켓이 명중한 걸 볼 수 있었다”고도 했다.
매 순간 힘든 상황임에도 쿠시니르 목사는 사역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도 전했다.
그는 “오늘 나는 리비우에서 50만권의 기도서를 인쇄해 배달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또 한국 등 이웃 국가들이 의료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리비우 주지사와 만나 협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피란길에 오른 차량 안 사람들의 사진을 공유하며 한국교회에 기도를 요청했다.
쿠시니르 목사는 “키이우를 떠나기 위해 차량에 오른 사람들의 표정에서 우리는 희망을 꿈꾸고 있다”면서 “전쟁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큰 이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