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박모(31)씨는 최근 유튜브 앱에서 ‘정부지원 저금리대출’이란 영상을 보고 호기심에 클릭했다가 깜짝 놀랐다. 일반적인 영상 콘텐츠처럼 보였던 ‘정부지원대출’이 사실은 대출금리 연 20%에 달하는 A금융의 대부업 광고였던 것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불법 대출광고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금융감독원은 이런 광고에 대한 사전심의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 게재를 책임지는 유튜브 운영사 구글도 사실상 수수방관하는 등 민·관의 무관심 속에 피해자만 늘어나는 형국이다.
23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유튜브 영상 콘텐츠로 위장한 불법 대출광고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콘텐츠가 위치해야할 자리에 교묘하게 광고 이미지(링크)를 삽입하는 수법이다. ‘정부지원상품’ ‘근로자대상 저금리대출’ 등 문구를 넣어 정책상품인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연결되는 홈페이지를 보면 법정 최고금리인 연 20%까지 대출금리를 받는 등 실상은 대부업체다. 광고 이미지에 정부 공식 로고인 태극마크까지 새겨져 있는 탓에 얼핏 보면 속기 쉽다.
박씨의 사례에 나온 A금융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에서 정식 허가를 받고 등록번호까지 받아 영업하고 있는 업체다. 음지 사업체가 아닌 정식 등록 사업자마저 버젓이 불법광고를 하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제재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지만 이를 감독해야 할 금감원은 이런 대출광고에 대한 사전심의를 민간협회에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부업체 영상매체 광고는 관련 법에 따라 협회 측에서 자율적으로 규제하도록 돼있다”며 “사전에 (광고들에 대한) 대부업법 위반 여부를 심의해 게재토록 하는 등 금감원 내부 절차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유튜브의 경우 TV광고와 달리 사전에 부적절한 광고를 걸러내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다. 유튜브가 대부업협회 자율심의 대상에서 빠져있는 탓에 규제에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민원, 제보, 시민감시단 등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한 뒤 등록업체의 불법 금융광고가 확인될 경우 사후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해외 기업인 구글이 ‘배짱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 골칫거리라고 토로했다. 서민금융진흥원 관계자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의 경우 부적절한 대출광고 대부분을 사전에 스크리닝하고, 불법 광고를 삭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내면 처리가 빠르다. 반면 구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같은 해외기업들은 우리나라 정부 요청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도 “해외 IT 플랫폼 기업들의 협조를 얻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구글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구글 측은 지난 21일 국민일보에 보낸 서면 답신에서 “유튜브는 광고 시스템 전반에 걸쳐 온라인 상에서 부적절한 요소들을 방지하기 위한 엄격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며 “광고주들이 자사 정책을 준수하는지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이다. 이날 현재도 불법 금융광고가 유튜브에 개재돼있다는 점에서 ‘엄격한 광고정책’을 적용하고 있다는 구글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불법 대출광고에 속아 고금리 대출을 받았더라도 실질적인 피해구제는 이뤄지기 어렵다. 대부업법은 허위·과장광고를 한 대부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지만, 대출계약 자체를 무효로 해주지는 않는다. 서금원 관계자는 “이처럼 불법광고에 속아 대출을 실행했더라도 대출계약은 유효하기에 갚아야 할 돈은 줄어들지 않는다”며 “피해지원은 정식 저금리 대환대출상품을 소개해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