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가 주장하지도 않은 법령을 근거로 청구를 인용하는 것은 변론주의 위반이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경남 창원시의 한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조합원 A씨가 조합 등을 상대로 낸 조합장지위 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조합장 B씨가 취임 이후 실제로는 정비구역에서 거주하지 않아 자격상실 사유가 발생했다”며 B씨에게 조합장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소송을 냈다. 도시정비법 제41조 1항 후문은 조합장이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을 때까지 정비구역에 거주해야 한다는 자격 유지요건을 규정하고 있는데, B씨가 이를 어겼다는 취지다.
1심은 A씨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2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2020년 7월 조합장으로 선임된 B씨가 2019년 12월에야 해당 정비구역으로 전입해 거주기간이 1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조합장의 자격요건으로 선임일 직전 3년 동안 정비구역 내 거주기간이 1년 이상일 것을 요구하는 도시정비법 제41조 1항 전문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변론주의 원칙을 위반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내려 보냈다. A씨는 조합장 선임자격이 충족돼도 거주를 이탈하면 자격이 상실된다는 규정에 대해서만 주장했는데, 법원이 A씨가 주장하지도 않은 사항을 심리해 청구를 인용하는 건 적법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반드시 청구를 기각하라는 취지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A씨가 파기환송심에서 도시정비법 제41조 1항 전문 요건을 주장하는 것으로 청구 원인을 변경할 경우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심리해 인용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