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은 애국 행동” 러, 학생들에 정치 세뇌…학부모 격분

입력 2022-03-21 15:09 수정 2022-03-21 15:36
워싱턴포스트는 교실이 애국심을 강요하는 푸틴 대통령의 또 다른 전선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나우 텔레그램

러시아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을 애국 행동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WP)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매체는 러시아가 학교를 정치 세뇌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주간 러시아 소셜미디어에는 고등학생 등이 ‘특별 애국 수업’이란 이름 아래 ‘Z교육’을 받은 내용의 게시물이 다수 올라왔다. Z는 지난달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표식으로 러시아 애국주의의 새로운 상징물로 떠올랐다. 학생들은 Z가 새겨진 옷을 입거나, Z모양으로 줄을 선 뒤 사진을 찍었다.

지난 3일엔 러시아 전역에서 500만명 이상의 어린이가 ‘평화의 수호자’라는 수업을 시청했다. 평화의 수호자는 얼마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범’이라고 지칭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가리킨다.

러시아 정부가 제작한 시리즈물인 평화의 수호자는 학교에서 온라인으로 방송되거나 필수 수업용 슬라이드로 교사에게 제공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푸틴 대통령의 연설 등이 포함돼 있다.

‘우크라이나는 실제로 국가로 존재한 적이 없는 말로로시야(소 아시아)로 불리는 작은 땅이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반도처럼 소련의 한 부분이다’는 주장 등이 담겼고, 일부 우크라이나 파벌이 나치와 협력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면서 현 우크라이나 정부를 나치로 비방하는 선동도 되풀이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교실이 애국심을 강요하는 푸틴 대통령의 또 다른 전선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나우 텔레그램

러시아는 유치원과 같은 어린 아이들에게도 반우크라이나 선전을 확대했다. 세르게이 크라브초프 러시아 교육부 장관은 “학교는 서방에 맞서 정보 및 심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싸움의 중심지”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특별 애국 수업을 통해 러시아군의 민간인에 대한 폭격을 가짜 뉴스로 제시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이를 ‘워싱턴의 공작’이라고 가르쳤다. 이는 대부분의 정보를 온라인으로 얻는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에게 특히 강조된 부분이다. 영국 런던의 ‘도시에 센터’(Dossier center)가 입수한 러시아 한 학교의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보면 ‘가짜: 러시아군이 하르키우 주거 지역 공격’ ‘사실: 러시아 고정밀 무기는 군사적 목표물만 공격’ 이런 식으로 쓰여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러시아 당국의 아이들에 대한 정치적 세뇌에 격분했다. 러시아 남부 흑해 인근 크라스노다르에 사는 학부모 이고르 코스틴은 WP와 인터뷰에서 “학교에서 딸에게 18일 행사를 위해 따뜻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어라‘고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지난 18일 전국적으로 크림반도 병합 8주년 축하 행사를 열었다. 코스틴은 “딸은 무슨 행사에 참여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코스틴은 학교로 침투하는 전쟁 선전에 대해 걱정하며 딸을 행사 당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의 말로는 딸과 같은 반 학생 22명 중 그날 학교에 온 친구는 5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코스틴은 “다른 부모들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었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사람은 없다. 다들 겁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 애국 수업을 거부했다가 학교에서 해고된 교사도 있었다. 지리 교사인 캄란 맨플라이는 지난 8일 러시아의 애국 수업에 대한 반대 글을 올렸다가 학교로부터 다음 날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SNS에 “국가 선전의 거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썼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