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 재래식 화장실에서 숨진 노동자…법원 “업무상 재해”

입력 2022-03-21 14:45

만성심장질환을 앓던 노동자가 공사 현장에서 열악한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다 숨졌다면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는 사망한 근로자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했다.

공사 현장에서 건설일용직으로 일하던 A씨는 2019년 4월 열흘을 내리 근무하고, 하루만 휴식한 뒤 복귀했다. 그러나 A씨는 근무 중 재래식 이동화장실 바닥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고, 같은 날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유족에게 유족급여와 장례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A씨에게 과도한 업무부담이나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진료기록 감정의 소견을 토대로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진료기록 감정의는 업무상 과로와 ‘발살바 효과’가 A씨의 만성심장질환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봤다. ‘발살바 효과’란 숨을 참은 상태에서 갑자기 힘을 주면 순간적으로 체내 압력이 급상승하는 현상으로, 심근 허혈성 급사에 이를 수 있어 겨울철 화장실 이용 중 이로 인한 사망 위험이 높다.

좁은 화장실도 지병 악화의 한 원인이 됐을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비좁은 화장실 공간과 악취가 고인을 직접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관상동맥 파열 등에 악화 인자가 될 수 있었다”며 “A씨 업무의 육체적 강도가 가벼웠다고 단정할 수 없고, 고인이 사건 현장에서 근무하기 전 심장질환이 급격하게 진행됐다고 볼 자료도 없다”고 판단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