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니치(일본에 사는 한국인)에 대해 많이 몰랐다. 그 사람들이 산 세월이 정말 미안했다.”
배우 윤여정이 지난 18일 열린 애플TV+ ‘파친코’의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드라마는 1915년부터 1989년까지의 한국과 일본, 미국을 오가며 펼쳐지는 대서사시를 담아냈다. 영화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은 다시 한 번 이방인의 삶을 연기했다.
윤여정은 일제강점기 고국을 떠나 일본으로 이민 간 주인공 선자 역을 맡았다. 그는 “독립이 되자마자 한국 전쟁이 나서 정부가 자이니치를 잘 돌보지 못했다. (한국) 국적이 있는데 아무 데도 속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며 “연기하며 역사에 대해 많이 배웠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날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어머니한테서 그 시절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소설을) 읽고 싶지 않았다”며 “대본이 들어와 읽고 나서는 굉장히 감명받았고, 조사를 얼마나 ‘끔찍하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틀 만에 다 읽었다”고 돌이켰다.
선자 역을 연기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을 묻자 그는 “‘끼끗하게’라는 표현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윤여정은 “험난한 길을 갈 때 비굴한 모습으로 극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자의 모습엔 존엄성이 있다. 그게 끼끗하다는 것”이라며 “그런 한국 여자를 대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깊이를 두면서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역할은 굉장히 오랜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역할을 하길 정말 잘했다. 그 역사를 내 늙은 얼굴에 표현할 수 있어 좋은 기회였다”고 돌이켰다.
처음엔 마음이 상하는 일도 있었다. 윤여정은 “수십년 연기한 나한테 오디션을 보라고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오디션을 보는 미국 문화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오디션을 봤는데 나한테 이 역할이 맡지 않는다고 하면 한국사회에선 ‘윤여정이 오디션 떨어졌다’고 인식된다. 그렇게 50년 커리어를 잃을 순 없어 현관 밖에다 대본을 버렸다”고 말했다.
‘파친코’에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대사가 등장한다. 윤여정은 일본어 대사에 대한 부담과 ‘극복기’도 털어놨다. 그는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하는데 일본어 대사가 있었다. 아들 역을 맡은 일본인 배우 소지 아라이가 오사카 사투리를 알고 있어서 그 앞에서 연습했는데, 어느날 소지가 내 연기를 보고는 ‘우리 할머니가 하던 바로 그 억양’이라면서 울더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드라마엔 윤여정을 비롯해 이민호, 김민하, 한국계 미국인 배우 진하 등이 출연한다. 메가폰을 잡은 코고나다, 저스틴 전 감독과 극본을 집필한 수 휴 프로듀서도 한국계 미국인이다.
코고나다 감독은 “윤여정과 함께하는 모든 장면에서 감탄했다. 윤여정의 얼굴은 한국의 역사가 담긴 지도”라고 극찬하며 “비록 한국에 대한 이야기지만 전세계 사람들에게 비슷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의 원작인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은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BBC에서 ‘2017 올해의 책 10’으로 선정됐다. 극본을 집필한 수 휴 프로듀서는 “8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책을 드라마로 만들면서 조사를 많이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며 “당시 사람들이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사진 자료가 많았다. 의상팀과 함께 그때 시대를 재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애플TV+는 오는 25일 총 8회로 제작된 ‘파친코’를 3회까지 선보이고 다음달 29일까지 매주 금요일 새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임세정 최예슬 기자 fish813@kmib.co.kr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