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경험’ 뭐길래… 기업들 “서비스 아닌 경험 팝니다” [스토리텔링경제]

입력 2022-03-21 06:05
LG전자가 18일 출시한 업(UP)가전 차세대 디오스 식기세척기에는 고객의 사용 패턴을 반영해 저소음 모드가 기본 코스로 적용돼있다. 사진은 모델들이 식기세척기를 소개하는 모습. LG전자 제공

LG전자가 지난 18일 내놓은 차세대 디오스 식기세척기에는 색다른 기능이 들어갔다. 소음을 줄인 ‘야간 조용 코스’가 그것이다. 이걸 기본 코스로 적용한 이유는 고객들 주요 사용시간에 있다.

LG 씽큐 애플리케이션(앱)과 연동해 식기세척기 사용 고객의 약 30%가 밤 9시 이후에 쓴다는 걸 고려한 것이다. 이 제품은 고객의 사용패턴과 불편한 점 등을 반영해 기능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는 LG전자의 ‘업(UP) 가전’ 중 하나다. LG전자는 ‘업 가전’의 핵심을 ’고객 경험’이라고 말한다.

기업들이 ‘고객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과 조주완 LG전자 대표는 올해 신년사에서 ‘고객 경험’을 외쳤다. 고객 경험에 최우선 가치를 두는 경영 철학을 공개적으로 역설한 것이다.

고객 경험은 도대체 뭘까. ‘CX(Customer eXperience)’라고도 부르는 고객 경험은 마케팅부터 판매, 사후 서비스(A/S)에 이르기까지 고객이 제품·서비스를 경험하는 전체 과정을 일컫는다. 이전부터 쓰여온 경영·마케팅 전략이다.

최근 들어 전자업계를 중심으로 고객 경험에 주목하고 있다. 제품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만큼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걸 넘어 제품·서비스가 제공하는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모델이 삼성 갤럭시 스튜디오 홍대본점에서 촬영하고 있다. 갤럭시 스튜디오에는 갤럭시 S22의 강화된 야간 촬영 모드인 '나이토그래피'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돼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아예 조직 명칭에 ‘경험’(X)을 넣으며 가야 할 지점을 명시했다. 올해 초 IM(모바일)부문과 CE(가전)부문을 통합한 완성품 부문의 이름을 DX(디바이스 경험), 산하의 무선사업부를 MX(모바일 경험)로 바꿨다. CX·MDE(멀티 디바이스 경험)센터도 신설했다. 가전과 모바일을 별개로 다루지 않고 플랫폼 안에서 삼성 제품으로 연결되는 방향을 목표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제품을 체험해볼 수 있는 체험형 매장인 ‘갤럭시 스튜디오’를 확대하고 있다.

LG전자는 가전과 경험의 접목에 무게를 둔다. LG전자의 업 가전은 ‘가전은 사는 순간부터 구형이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기능을 계속 추가해 새 제품을 쓰는 것 같은 고객 경험을 제공한다는 걸 지향점으로 한다. LG 씽큐 앱으로 가전제품들을 연결하고 이용자가 필요한 기능을 직접 선택해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야간에 냉장고 문을 열 때 눈부심을 방지할 수 있도록 조명을 시간대에 따라 조절하거나 세탁기·건조기에 반려동물 코스를 적용하는 식이다.

고객 경험은 ‘제품 생태계’와 맞닿아 있다. 애플, 삼성 등이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태블릿PC, 노트북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생태계’를 강조하는 배경에 고객 경험이 있다. 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일종의 ‘유니버스’를 구성하고 생태계 내에서 고객 경험을 향상하면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진다. 한 제품의 구매가 다른 제품의 구매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21일 분석했다.

고객 경험 전략은 산업계 전반으로 확장한다. 유통업계에선 오프라인 매장을 ‘체험’에 무게를 둔 공간으로 바꾸는 추세가 뚜렷하다. 온라인 중심 브랜드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신사, 젠틀몬스터 등의 패션 브랜드들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옷 외에 전시, 공연 등의 색다른 고객 경험을 제공하면서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고 있다.

고객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흐름은 MZ세대가 주요 소비자로 부상한 상황과 궤적을 같이 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더라도 제품을 직접 경험하고 브랜드 가치를 체험하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특히 활동적인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체험하기 때문에 고객 경험 전략의 효과도 더 크다”고 말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정보기술(IT) 분야의 급격한 성장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형의 서비스가 중심축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경험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이준영 교수는 “비대면 서비스가 확대하면서 삼성전자, LG전자 등도 모바일 앱이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경험의 범위를 확대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 바이오스피어 외관 모습. 희귀·멸종위기 식물들이 있는 유리온실로 지역 명소로 꼽힌다. AP뉴시스

고객 경험 전략은 전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 사옥의 유리온실 ‘바이오스피어’는 지역 명소다. 희귀·멸종위기 식물이 있는 이 유리온실은 언뜻 아마존과 관계없어 보이지만, 직원 복지를 강조하고 생물권을 존중하는 기업 철학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애플과 구글은 제품 특성에 따라 배치를 달리하는 등 철저히 체험 중심의 매장을 구성해 고객 경험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소비자의 기억이 기업 이미지를 형성하고 장기적인 선호도와 재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