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의혹 재판에서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을 전부 재생하는 문제를 놓고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등 피고인들과 검찰 간의 충돌이 벌어졌다. 정영학 녹취록은 대장동 개발 사업 과정에서 김씨가 대장동 민간사업자들과 대화한 내용을 정영학 회계사가 녹음한 파일이다. 20대 대선 과정에서 녹취록 내용을 둘러싸고 ‘그분’ 논란이 벌어진 진원지이기도 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이준철)는 18일 김씨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남욱 변호사, 정 회계사 등의 15회 공판 기일을 열어 녹취록 등에 대한 증거 조사 일정을 논의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이 사건 녹음파일은 이미 정영학 피고인에 의해 선별됐고, 검찰에서도 선별한 상황이라 녹음 전후에 어떤 맥락이 있는지 알 수 없다”며 “녹음파일 전체를 다 듣는 방법이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녹취록에 기재된 대화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녹음 파일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공소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검찰에 있는 만큼 사적인 내용이 있다면 검찰이 (증거 신청을) 철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 변호사 측 변호인도 “구속된 피고인으로서는 녹음파일을 확인할 방법 자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어떤 맥락에서 이뤄진 대화인지 확인도 못한 상태에서 필요한지 불필요한지 선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녹취록은 피고인들이 겪었던 사실에 관한 것”이라며 “(변호인들이) 이미 내용을 검토했을 텐데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막연하게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으니 다 들어봐야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정영학) 녹음파일이 총 140시간 정도 된다고 한다”며 “그걸 다 듣는다면 한두 기일 만에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난색을 표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는 화천대유가 하나은행과 컨소시엄을 구성할 당시 실무를 담당했던 하나은행 관계자 이모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검찰은 이씨에게 “하나은행이 이 사건에서 대출을 많이 해줬는데, 대출의 대가로 김만배 피고인이 증인에게 30억원에서 50억원을 주겠다고 했던 부분에 관해 조사받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검찰은 “조사받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이에 검찰이 “조사받은 일이 한 번도 없나”라고 재차 확인하자, 이씨는 “금품 받은 일이 있냐고 (검찰이) 물어봤고 받기로 약속한 일이 있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대답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이어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가 영화 ‘무간도’를 언급하면서 ‘정민용 변호사를 성남도개공에 심어뒀다’는 취지로 말한 일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이씨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