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친서방 러시아인을 ‘쓰레기’, 서방 세력을 ‘나치’에 비유한 연설을 한 것을 두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이 실패하면서 내부 비판을 잠재우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왔다.
17일(현지시간) CNN의 보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의 연설과 관련해 “기조의 변화를 의미하며,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라고 입을 모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6일 TV 연설을 통해 친서방 러시아인들을 “쓰레기, 배신자”라고 칭하며 강력한 탄압을 예고했다. 또 서방을 “나치 독일”에 비유하며 유럽과 미국을 지지하는 러시아인들을 “노예”라고 조롱했다. 이 매체는 이런 푸틴의 과격한 표현을 ‘선동적인 스탈린식 연설’이라고 부르며 더 강력한 내부 단속을 할 징조로 해석했다.
이는 러시아 내에서 평화적인 반전 시위의 흐름이 더 거세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실제로 러시아 내에서는 최근 중무장한 경찰에게 체포될 것을 각오하면서 반전 메시지를 내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국영 채널1 생방송 도중 반전 팻말을 들고 기습 시위를 벌인 한 언론인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러시아 채널1 편집자 마리아 오브샤니코나는 지난 14일 채널1 생방송 도중 뉴스를 전하는 앵커 뒤에 반전 팻말을 들고 나타났다. 팻말에는 ‘전쟁 반대, 전쟁을 멈춰라. 선전선동을 믿지 말라. 그들은 지금 당신에게 거짓말하고 있다’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이 일로 오브샤니코나는 14시간 동안 경찰 조사 끝에 3만 루블(약 34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고 풀려났다. 그는 17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국민들이 정부 매체의 보도 방송을 듣는 것을 멈춰야 한다. 대안 정보를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나도 알지만 사람들은 그걸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최고 발레리나로 꼽히는 올가 스미르노바도 조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한 뒤 볼쇼이 발레단을 탈퇴했다는 소식이 이날 전해졌다. 스미르노바는 “러시아를 수치스러워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면서 “항상 문화·체육 분야서 성취를 냈던 재능 넘치는 러시아인을 자랑스럽게 여겨겼지만, 지금은 (침공) 전후를 가르는 어떤 선이 그어진 것 같은 기분”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CNN은 “전문가들은 러시아 내에서 꾸준히 높은 지지율을 누려온 푸틴이 이제 친러 세력을 위해 위협적인 전략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정치 분석 전문가는 자신의 SNS를 통해 “푸틴의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의 연설은 절망, 무력감”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모두의 팔꿈치를 비틀고, 가두고, 감금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미래가 없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미끄러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엘리자베스 브라우 미 기업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푸틴의 연설은 그가 얼마나 고립됐는지를 보여준다”며 서방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입혔다고 분석했다.
브라우 연구원은 “맥도날드가 철수하는 나라들에는 굴욕감이 생긴다. 러시아인들이 나라를 떠나기 전에 구할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얻기 위해 이케아로 몰려들고 있다”며 “이런 소비재들이 사라졌을 때 러시아 대중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반응을 생각하면 상당히 두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분노 어린 연설은 영국 국방부가 러시아의 침공이 “모든 전선이 고착됐다”는 언급을 한 이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국방부는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군은 최근 육지, 해상, 공중에서 앞으로 조금씩밖에 나아가지 못하면서 계속해서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견고하고 조직적인 저항을 이유로 들었다. 이는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의 평가와도 일치한다고 전해졌다.
다만 이런 고착이 러시아군의 후퇴를 의미하기 보단 전술적인 영향이라고 CNN은 분석했다. 영국 국방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공공정보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국에 걸쳐 증원군을 소집하는 중이다. 여기에는 러시아 연방 동부 지역, 태평양 함대 및 아르메니아 군대, 민간 군사 회사, 시리아인 및 기타 용병의 전투기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