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타 발레리나, 우크라 사태 비판하며 볼쇼이 발레단 사퇴

입력 2022-03-17 11:12 수정 2022-03-17 14:2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며 볼쇼이 발레단을 그만둔 올가 스미르노바가 1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으로 이적을 발표했다. 위키미디어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수석 무용수 올가 스미르노바(30)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판한 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으로 이적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외국 국적 무용수들이 잇따라 그만둔 가운데 러시아 국적 무용수로는 스미르노바가 처음이라 국제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스미르노바는 1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을 통해 자신의 이적을 발표했다. 그는 “언젠가는 볼쇼이 발레단을 떠날 생각이었는데, 현재 상황이 사퇴를 앞당겼다”고 밝혔다. 테드 브랜슨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은 “위대한 무용수인 스미르노바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발표했다. 스미르노바는 4월 3일 클래식 발레 ‘레이몬다’의 주역으로 네덜란드 관객과 처음 만날 예정이다. 이날 공연에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솔리스트를 그만두고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합류한 브라질 출신 발레리노 빅터 카이세타도 출연할 예정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스미르노바는 2011년 마린스키 발레단 부속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졸업한 뒤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의 솔리스트로 입단했다. 2016년 프리마 발레리나가 된 그는 국제 갈라 무대에서 자주 초청되는 스타 무용수 가운데 하나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의 엄격한 여론 탄압과 검열의 와중에도 반전 메시지를 낸 바 있다. 그는 텔레그램을 통해 “내 영혼을 다해 이번 전쟁을 반대한다. 다른 러시아 무용수들도 같은 생각이다”면서 “내 할아버지가 우크라이나인인 것이 전쟁에 반대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이 러시아를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전쟁으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대부분 군사적 충돌 지역에 있지 않지만 이런 세계적 재앙에 무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올가 스미르노바가 텔레그램에 발표한 반전 메시지.

볼쇼이 발레단 웹사이트는 여전히 스미르노바를 단원으로 올려놓고 있으며, 발레단 대변인은 스미르노바의 출국에 대해 ‘개인적인 결정’이라고 언급했다고 밝히고 있다. 마하르 바지예프 볼쇼이 발레단 예술감독은 러시아 언론에 스미르노바의 네덜란드 이적을 확인하면서도 ‘1년의 휴직’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스미르노바의 탈퇴 결정은 러시아 발레계에 폭탄과 같다. 스미르노바는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떠났다”는 러시아 무용평론가 레일라 구치마조바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전했다.

스미르노바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마린스키 발레단과 볼쇼이 발레단 등 러시아의 양대 발레단을 그만둔 무용수들 가운데 한 명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출신의 자코포 티시, 브라질 출신의 다비드 모타 소아레스, 영국 출신의 잰더 패리쉬 등은 러시아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구 언론은 스미르노바가 러시아 국적으로 해외에 나갔다는 점에서 과거 냉전시대 구 소련 무용수들의 망명을 떠올리게 한다는 기사를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 앞서 1961년 키로프 발레단(지금의 마린스키 발레단) 소속이던 루돌프 누레예프가 프랑스에서 망명한 것을 시작으로 1970년 나탈리아 마카로바, 1974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등 러시아 발레계 인사들 다수가 잇따라 서방에 망명했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소련에 대한 서방의 승리로 여겨졌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