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쟁 범죄자’로 불렀다. 바이든 대통령이 그를 전범으로 부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 행사를 끝내고 이동하던 중 푸틴 대통령이 전범인지 묻는 말에 “나는 그가 전범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애초 첫 질문에선 “아니다”고 말했지만, 이후 해당 기자에게 질문을 다시 해달라고 요청한 뒤 이같이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한 연설에서 “우리는 마리우폴의 가장 큰 병원에서 수백 명의 의사와 환자들이 인질로 잡히는 것을 목격했다. 이것은 잔혹 행위”라며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끔찍한 파괴와 공포를 자행하고 있다. 너무나 끔찍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잔인한 독재자가 외국을 침공한 야만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우리는 민간인의 생명을 위협·살해하고, 병원, 임신한 여성, 언론인 등을 위협하는 독재자의 야만적 행위, 끔찍한 행위를 모두 봤다”며 “나는 그가(바이든 대통령이) 직설적으로 답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그간 전범이라는 단어가 검토를 필요로 하는 법률적 용어라면서 푸틴 대통령의 행위를 전쟁범죄로 규정하는 데 주저해 왔다.
이와 관련 사키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전범임을 입증한 추가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 진행 중인 법적 절차가 있고, 국무부에서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국무부는 러시아군의 무차별 민간인 사살에 대한 증거를 수집 중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카림 칸 검사장은 이날 리비우에서 “러시아와의 분쟁에서 전쟁범죄가 자행됐다는 합리적 근거가 있어서 우크라이나에 왔다”며 “집속탄을 사용하거나 밀집된 민간인 지역에 과도한 공격은 금지돼 있다”고 CNN에 말했다.
앞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고의로 민간인과 언론인을 겨냥했는지 조사 중”이라며 “고의라면 전쟁범죄에 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민간인에 대한 고의적 공격은 전쟁범죄라고 말했다.
AP는 바이든 대통령의 전범 규정은 우크라이나 침공 후 미 당국자가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의 행동에 대해 내놓은 가장 강력한 규탄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드론과 대공 및 대전차 미사일 등 8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 의회 화상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더 많은 군사적 지원을 호소한 뒤 이뤄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전례 없는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러시아 항공기와 헬기를 차단하기 위한 800기의 대공 미사일 시스템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스팅어 대공미사일 시스템 800기, 재블린 대전차미사일 2000기, AT-4 대전차 6000기 등 모두 9000기의 대(對)기갑 공격무기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원품목엔 드론 100기, 기관총·유탄 발사기·소총·권총 등 7000정, 소화기 탄약 및 박격포탄 2000만 발, 신체 보호장구 2만5000세트, 헬멧 2만5000개 등도 포함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드론 지원 등을 언급하며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해 최첨단 무기를 보내겠다는 약속 이행의 차원”이라고도 설명했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 요청에 따라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사거리가 긴 대공미사일 시스템을 획득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안보위원회 서기와 통화하고 러시아의 생·화학 무기 사용 우려에 대해 경고했다.
에밀리 혼 백악관 NSC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설리번 보좌관은 파트루셰프 서기에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경우의 결과와 의미에 대해 경고했다”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러시아가 외교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우크라이나 도시와 마을에 대한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언급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러 간 고위급 회담이 이뤄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백악관은 “설리번 보좌관이 러시아의 부당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의 확고하고 분명한 반대를 재확인했다”며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계속 지원하고 러시아에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또 동맹, 파트너와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부를 강화하겠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