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평화의 지도자가 돼 달라”…격정의 호소한 젤렌스키

입력 2022-03-16 23:29 수정 2022-03-16 23:40

“1941년 12월 진주만 공격을 받던 비극적인 아침, 2001년 9월 11일 비극의 날을 기억하십시오. 무고한 시민들이 받았던 공격을 우리는 매일 경험을 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미국이 겪은 아픔을 언급하며 우크라이나 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거듭 촉구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서는 “세계 평화를 위한 지도자가 돼 달라”며 러시아에 대한 더욱 강경한 조치를 호소했다. 그는 미 의회 초청으로 이날 15분가량 화상 연설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지난 3주간 약 1000개의 미사일을 발사했고, 드론을 사용해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죽였다. 유럽이 지난 80년간 보지 못한 테러”라며 “이 테러에 대항하기 위한 전 세계의 답변을 요청한다. 우크라이나 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위해 요구할 게 많냐”고 꼬집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하늘을 수천 명의 죽음의 근원으로 만들었다”며 인도주의적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테러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인도적 비행금지구역은 전직 국방·국무부 관료 등 미 외교·안보 전문가 27명이 최근 제안한 것이다. 민간인 대피와 인도적 지원을 위해 러시아와 협의한 ‘인도주의 통로’에 제한적으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자는 아이디어다.

그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어렵다면 대안으로 항공기나 지대공 미사일 ‘S-300’ 같은 항공방어시스템 지원을 요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는 가치에 대해 잔인한 공격을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고, 우리 조국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 “미국인들이 갖는 것과 같은 꿈”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미국 시민의 감정에 호소했다. 미국에서 존경받는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사용한 “나에게 꿈이 있다”는 문장도 썼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 중간 러시아 공격으로 겪은 참사를 담은 1분 30초 분량의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동영상에는 이전의 평화로운 모습과 폭격으로 무너진 도시, 사망한 시민과 아이들 모습 등이 교차하며 전쟁이 바꿔놓은 참혹한 현실을 담았다. 그의 연설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의원들도 많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 의회가 더 많은 일을 해달라면서 “우크라이나 공격을 지원하는 모든 러시아 정치인을 제재하고, 러시아인이 우크라이나 파괴에 사용할 단 한 푼의 돈도 받을 수 없도록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모든 미국 기업이 러시아를 즉각 떠날 것을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는 새로운 제도, 새로운 동맹이 필요하다. 즉시 갈등을 멈출 힘과 의식을 가진 책임감 있는 국가들의 연합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며 24시간 이내에 분쟁을 멈추기 위해 개입하는 ‘U24’라는 새로운 국제 동맹의 창설도 제안했다. 그는 “새로운 동맹이 재해, 인재, 인도주의적 위기, 전염병 등을 경험하는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 끝부분 영어로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직접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당신이 세계의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세계의 지도자가 된다는 건 평화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국민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유럽과 세계의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고, 미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