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녹는 이달 하순이 분기점…러시아 전차부대 전진 힘들어”

입력 2022-03-16 17:47 수정 2022-03-16 22:21
“체제간 전쟁, 묵은 감정 풀 중재 필요, 이 사태 오래 가면 모두가 불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자유에 대한 도전”
“반전 시위 확산은 자유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핵심가치 보여 주는 것”
“푸틴은 스마트하고 결단력 있어…그런데 이번 전쟁선 그런 모습 보이지 않는다”
극단적인 선택 하지 않도록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 속히 제안해야
윤석열 정부 “유라시아 외교의 중요성 고려해 대범하고 창의적인 전략의 새 판 짜야”
이양구 전 우크라이나 대사가 15일 국민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인턴기자.

“서로 간에 묵은 감정이 쌓여 있습니다. 중재자가 필요하고, 이 사태가 오래 가면 모두가 불행합니다. 이달 하순이 전쟁의 분기점이라 봅니다. 그때가 되면 눈도 녹고 땅이 질어져 러시아의 전차부대도 전진하기 힘듭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는 등 정상적이지 않은 면을 많이 보이는데, 그가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속히 제안해야 합니다.”

이양구(63·사진) 전 우크라이나 대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이같이 전망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와 관심을 촉구했다. 국제정치 전문가인 이 전 대사는 우크라이나 대사,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에서 35년간 외교관 생활을 했다.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해법, 교회의 역할 등에 대해 소견을 밝혔다. 그는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파송 전문인 선교사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3주째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이렇게 거셀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또 러시아 군사력을 과대 평가했고,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대응을 과소 평가하는 오판을 했다. 오늘도 우크라이나 여러 국회의원에게 도움 요청을 받았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 지 검토해야 한다. 현지 소식을 알리고 국내외 NGO와 한국교회 등을 통해 구호 물자 전달에 힘을 쏟고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체제간 전쟁이라고 하던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자유에 대한 도전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특히 위기 때 강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유는 어떤 희생을 해서라도 지켜야 될 최고의 가치임에 틀림없다. 우크라이나는 오래 전부터 자유를 가장 큰 가치로 여긴다.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있는 유로마이단 광장에는 ‘Freedom is our Religion’(자유는 우리의 종교)’라고 쓰여 있다, 자유에 대한 소중한 가치는 비단 유럽만이 아니다. 러시아 50여 도시를 비롯 전 세계에서 반전 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자유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핵심가치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쟁을 통해 한국교회는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의 국가관과 안보관, 세계관과 특히 자유민주주의와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국가 정체성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의 출구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치킨 게임처럼 흐르고 있다. 러시아를 너무 코너로 몰면 중국과 북한 등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들이 더 가까워지고 우리에게도 부담이다. 러시아의 요구도 어느 정도 들어 주는 게 맞다고 본다. 러시아에 가했던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서방의 자본과 기술로 러시아를 현대화하고 경제발전을 이뤄 정치 발전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러시아’를 만들어야 한다. 러시아에게 ‘중국을 견제하는’ 건설적인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인해 러시아 내 반전 여론이 드세진 걸로 알고 있다. 이런 여론이 러시아의 행정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까.
“국민들의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본다. 루블화 폭락, 인플레이션 등으로 러시아 국민이 서방의 경제제재의 효과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사실 러시아 국민 대다수가 이번 전쟁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명분이 없는데 경제제재로 인한 국민 피해는 크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과 소수의 권력 엘리트가 주도하는 전쟁이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여론은 더 나빠지고 러시아 행정부가 정치적인 부담을 상당히 많이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다년간 외교관 생활을 했다. 가까이서 본 푸틴은 어떤 인물인가.
“제가 아는 푸틴 대통령은 스마트하고 결단력이 있고 카리스마가 있었다. 리더십과 다양한 전략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선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원래 의도했던 대로 3~5일 단기전으로 갔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러시아도 이제 적절하게 출구 전략을 찾아야 한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어땠나.
“젤렌스키가 2019년 4월 대통령 당선 당시의 과정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비정치인이 정치에 들어오는 것이 의외였고, 우크라이나와 같이 문제가 많고 리스크가 큰 나라에 저런 분이 대통령을 해도될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코미디언 겸 배우, 엔터테인먼트 CEO였다. 선거 운동 과정을 보니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었다. 10만 명 규모의 대형 운동장에서 포로셴코 현직 대통령에게 공개 토론 도전장을 던졌다. 국민과 SNS 등을 통해 소통하고, 국민의 의견을 겸손하게 경청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좀 더 신중하게 국력을 키워 이번 사태를 막았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끝까지 목숨 걸고 항전하겠다는 위기관리 리더십을 보여주고, 국민을 통합하게 만든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 같다.”
우크라이나 대사 시절 현지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모습. 왼쪽 세번째가 이양구 전 우크라이나대사. 강민석 선임기자

-이번 사태로 한국교회가 깨달아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이번 전쟁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계시록 한 부분의 시작일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홍해의 기적이 나타날 수도, 그렇지 않다면 아마겟돈으로 갈 수도 있다. 크리스천들에게 주는 교훈이 분명 있다.
한국교회도 스스로 반성할 점이 없는지 통렬하게 봐야 한다. ‘내 양을 치라’는 말씀처럼, 모든 믿는 사람이 ‘내 양을 치는’ 사람이 돼야 하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자유민주주의에 서 있는가, 어둠의 세력 위에 서 있는가,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념 갈등이 많은데, 생명을 중시하고 인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것이 경제적 이익보다 앞서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기업이 어렵게 된다’는 이야기를 우선해선 안 된다. 푸틴의 눈치를 볼 것인가, 시진핑의 눈치를 볼 것인가.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소명과 사명을 명확히 하는 것,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교회에 던진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한국교회가 정부에 대해 워치독(watchdog, 감시견) 역할을 충실히 하길 바란다.”
우크라이나 대사 때 수도 키이우에서 한 컷.

-언제 신앙을 갖게 됐는지.
“교회는 초등학교 때부터 크리스천 어머니를 따라 다녔다. 신앙이 깊어진 것은 외교부선교회를 나가면서부터다.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했다. 성경을 읽으며 진한 감동이 왔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달았다. 러시아 전근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고 인도하심을 체험했다. 이후 성경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다니엘서 1장 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라는 성경 구절을 늘 마음 판에 새기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사 재직 때 이 지역 개발과 복음화를 위해 힘썼다.
“일 차원에서 세 가지에 역점을 두었다. 첫째는 농업 메가 프로젝트다. 100만 헥타르를 확보해 영농, 가공, 농산업, 유통, 물류, 신재생에너지, 디지털 등 벨로체인기반의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고, 둘째는 메가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농업 실크로드를 구축하는 것, 셋째는 농업과 에너지, 교통, 물류 등 멀티플 실크로드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이것은 복음의 실크로드와 직결된다. 우크라이나는 농업 메가 프로젝트를 구축하기 위해 매우 적합한 위치에 있었다. 대사로 재임한 3년 내내 드림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출석 교회에서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했는데
“그렇다. 선교차원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약 3퍼센트 내외의 개신교 크리스천들이 있다. 교회는 1만개가 넘는다. 그리고 250년 넘는 기독교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크리스천들은 한국을 기독교 국가의 롤모델로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국가발전과 기독교간에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2017년 6월 한국의 CBMC와 세계성시화운동본부와 우크라이나 현지 기독교 단체 간 국가 지도자 포럼, 집회 등을 공동으로 대형 행사를 추진했다. 이를 계기로 양국 기독교간 협력의 물꼬를 트게 한 큰 의미가 있었다. 당시 한국 참가자들과 우크라이나 국가 지도자들과 한인 선교사들 그리고 현지인 교회 지도자들을 하나로 연합하게 하는 연결 고리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양 국의 크리스천 국가 지도자들이 발제자로 참여한 국가리더십 포럼, 기독실업인 세미나, 문화예술공연, 저녁집회, 목회자 세미나, 전도세미나, 기도세미나, 한국 목회자 주일예배 설교, 전도실천, 고려인 이주 80주년 기념공연 등을 진행했다.
여러 차례 언론에 나온 것을 잊을 수 없다. 왜 한국 기독교가 국가 발전에 기여했는지 우크라이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증거했다. 메시지를 전할 기회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구 선생 등 크리스천 애국지사들의 역할에 대해서 빼놓지 않고 얘기했다. 우크라이나에 진출해 있는 60여 선교사들을 격려하려 노력했다. 중요한 행사나 모임 등에 참여했다. 한인교회에 출석해 한 달에 한 번 대표기도를 하고, 때로는 메시지를 증거하기도 했다.”

-현재 ‘함양 유토피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경상대 교수로 재직하며 경남 함양 농산촌 유토피아 프로젝트 특별위원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농촌 유토피아 사업이 잘 되면 대한민국 농촌발전에 제3의 문명사적 운동이 될 것이다. 대봉산리조트, 메디슨 모터스, 산산&산삼 R&D센터, 죽염, 철갑상어, 자발적 협동조합 마천 옻 단지, 농촌미네르바대학, 개평한옥마을, 지리산 둘레길, 서하초등학교 교육 공동체 모델을 만들 계획이다. 이 사업은 함양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농산지역에 모델을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 21세기 농촌개발의 모델을 만들어내고, 고령화 문제 해결 모델이 제시되었으면 한다. 특히 식물기반을 기반한 약용작물 생산에 교회들이 적극 참여해 교회 자립에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삽화=국민일보 그림창고.

그는 인터뷰 도중 “그동안 우리는 동맹이나 우방을 소홀히 했다. 이념·진영 갈등이 심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외부의 도전을 직시하기보다 국내 문제에 함몰되기도 했다. 북핵 문제나 종전선언 등에 대한 낭만적 기대나 중국·러시아의 권위주의에 대한 선의의 기대 등 안보에 대한 모럴 해저드가 팽배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정체성 측면에서 다소 모호하지 않았는지 성찰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해 “유라시아 외교의 중요성을 고려해 대범하고 창의적인 전략의 새 판을 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인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가치외교, 유라시아를 상대로 외교전략을 새롭게 수립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초당적인 외교, 한·미 동맹 강화, 한·일 관계 회복을 강조했다.

특히 ‘미들파워 네트워크’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강대국 중심의 지정학 질서가 흔들리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제정치의 냉혹함과 잔인함, 우리가 처한 안보 현실을 직시하고 소탐대실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누구인가.
한양대 정치외교학과에서 공부하고 외무고시(18기)에 합격했다. 2016~2019년 우크라이나 대사를 역임했다. 앞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대한민국 총영사, 외교통상부 조정기획관, 카자흐스탄 총영사, 러시아 CIS 과장, 미국 LA 총영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경상대 교수,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상임대표, NGO 사랑광주리 이사, 사랑글로벌프렌드(SGF)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