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 주고, 벌어서도 남 주자”…‘한남동 슈바이처’의 유언[영상]

입력 2022-03-16 17:38 수정 2022-03-17 10:27
장응복 장로가 생전에 다큐멘터리 영상에 출연한 모습. 자신이 한동대에 거액의 기부를 결심하게 된 취지를 밝히고 있다. 한동대 제공

“배워서 남 주세요. 그리고 벌어서도 남 주세요.” 구순이 넘은 할아버지는 자신이 기부한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 이 말만큼은 잊지 않았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이 말대로 살다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젊은 시절 배운 의술로 한 평생 환자들을 돌보고 사람을 살리는데 사용하고, 100억원이 넘는 전 재산을 대학교에 선뜻 내놨다. 한국 기독교 초기 ‘전도부인’이었던 할머니를 시작으로 증손주까지 6대에 걸친 신앙 가문을 둔 그는 자손들에게 “누가 뭐라해도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달 초 99세 일기로 소천한 장응복 온누리교회 장로 이야기다. 미션스쿨인 한동대학교에 전 재산을 포함해 113억원을 기부했다는 소식 뒤에 그와 아내인 김영선(93) 권사의 신앙과 숨은 선행 이야기가 뒤늦게 회자되고 있다.

장응복 장로(오른쪽 네번째)와 김영선 권사(오른쪽 다섯번째) 부부가 2015년 9월 경북 포항 한동대에서 장학금 기증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한동대 제공

황해도 출신인 장 장로는 6·25 전쟁 때 월남했다. 북한에 있을 때 딴 의사면허증으로 1960년대 초 서울 한남동에서 ‘장 의원’을 열어 30년 넘게 진료했다. 한남동의 첫 의사이기도 했던 그는 거의 쉬는 날 없이 일했다. 궁핍한 시절이라 무료 진료가 태반이었지만, 개의치 않고 환자들을 돌봤다. 아프고 가난한 사람은 그저 돕는 것이라고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귀가 닳도록 듣고 배운 터였다. 그의 아내 김 권사는 간호사로 그의 옆을 지켰다.

장 장로 부부는 지극히 검소했다. 집에 있는 물건들 가운데 10년 넘은 건 새것이라고 할 만큼 아껴가며 살았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은 일찌감치 기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장 장로는 생전에 남긴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남한으로 피난 온 이후) 주위에서 도와주는 분이 많았다. 마치 누가 끈으로 잡아당기듯이 도와줬다”고 회고하면서 부모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벌어서 남 줘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그런 그에게 ‘배워서 남 주자’를 모토로 설립된 한동대는 그의 신앙적 가치관에 꼭 들어맞는 곳이었다.

초창기 한동대 소액 후원자였던 장 장로 부부는 2015년 100억원 기부 약정을 했고, 그의 자녀들은 유산상속포기각서를 썼다. 그의 세 아들 가정은 흔쾌히 동의했다. 한 평생 부모가 보여준 삶과 신앙의 모습 속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장응복 장로 부부가 한동대 장학프로그램인 '가디언스 장학회' 장학생들과 경북 포항의 학교 교정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한동대 제공

장 장로가 지난 6일 소천한 뒤 많은 뒷얘기들이 오르내린다. 대부분 숨겨진 그의 또 다른 선행들이다. 생전에 장 장로와 가깝게 지냈던 강신익 지앤엠 글로벌 재단 공동대표는 16일 “장로님은 교육 뿐만 아니라 불우 이웃과 탈북민 등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다. 이들을 위해 알려지지 않게 도우신 일들이 무수히 많다”고 귀뜸했다. 교회 관계자들과 통화할 때마다 ‘뭐 도와줄 일은 없는지’ ‘필요한 것 있으면 알려달라’고 먼저 말하는 게 장 장로였다고 한다.

이재훈 온누리교회 목사는 “장 장로님 부부는 하나님 아버지만을 바라보는 단순한 영혼의 힘을 가진 분”이라며 “얼마나 많은 걸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걸 나눴는지 삶으로 보여주셨다”고 회고했다. ‘한남동 슈바이처’가 남긴 유산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긴 유산이기도 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