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생방송 중 반전시위 언론인 “침묵 부끄러웠다”

입력 2022-03-16 11:20 수정 2022-03-16 13:20
러시아 채널1 편집자 마리아 오브샤니코바(사진 속 화면 오른쪽)는 지난 14일 저녁 자사 생방송 도중 뉴스를 전하는 앵커 뒤에 반전 팻말을 들고 나타났다. 그 장면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 국영 채널1 생방송 도중 반전(反戰) 팻말을 들고 기습 시위를 벌인 언론인이 “크렘린궁의 선전을 위해 일하면서 침묵했던 내가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15일(현지시간) “러시아 채널1 편집자 마리아 오브샤니코바가 미리 촬영한 영상을 시위 직후에 공개했다”며 “오브샤니코바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은 범죄다. 우리(러시아 국민)의 힘으로만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오브샤니코바는 러시아 국민에게 “시위를 하자. 겁먹지 말자. 그들(러시아 정부와 경찰)은 우리를 모두 체포할 수 없다”며 “러시아 국민을 좀비로 만드는 것을 묵인했던 게 부끄럽다. 우리는 비인도적 정권을 목도하면서도 잠자코 있었다”고 비판했다.

오브샤니코바는 우크라이나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가족 구성의 배경도 설명했다.

오브샤니코바는 지난 14일 저녁 채널1 생방송 도중 뉴스를 전하는 앵커 뒤에 반전 팻말을 들고 나타났다. ‘전쟁 반대. 정치 선전을 믿지 말라. 이곳은 당신에게 거짓말하고 있다’는 문구가 팻말에 작성됐다.

오브샤니코바는 즉시 경찰에 체포됐고, 그 이후 연락이 끊겼다가 지난 15일 저녁 수도 모스크바 오스탄키노 지방법원을 빠져나오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에서 14시간 넘게 신문을 받은 뒤 법정에 3만 루블(약 34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법원 밖으로 나온 오브샤니코바는 “매우 힘들었다. 이틀간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스탄키노 지방법원은 오브샤니코바에게 생방송 시위 직후 정부의 승인 없이 반전 의견을 후속 영상에서 발설한 혐의로 벌금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생방송 중 시위와 관련한 혐의로 추가 처벌을 받을 여지가 생겼다.

러시아 채널1 편집자 마리아 오브샤니코바가 15일(현지시간) 수도 모스크바 오스탄키노지방법원 밖으로 나오면서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있다. 타스연합뉴스

러시아 사법당국이 오브샤니코바에게 쏠린 세계의 눈을 의식할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 야권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까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맞선 각국 정계 인사들이 오브샤니코바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나발니의 보좌관은 트위터에 “오브샤니코바를 대신해 기꺼이 벌금을 내겠다”고 적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오브샤니코바를 특별히 언급하며 “대사관 보호나 망명으로 보호하는 외교적 노력을 시작할 것”이라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