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위기’ 러시아…“소련시절 경제로 후퇴”

입력 2022-03-16 00:05 수정 2022-03-16 09:47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소련군 복장을 한 군인이 소련 국기를 들고 블라디미르 레닌의 무덤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AP 뉴시스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제재 여파로 러시아 경제가 약 30년 전 구소련 수준으로 후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달 안으로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에 빠져 100여년 만에 ‘국가 부도’를 맞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CNBC는 14일(현지시간) 미 싱크탱크 외교정책연구소(FPRI)가 “향후 5년 이상 러시아인들은 1990년대 수준이나 그보다 더 열악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보도했다.

‘경제 성장’으로 집권해온 푸틴도 위기

전문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집권 이후 199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경제가 성장했지만 이번 제재 여파로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력을 기반으로 20여년 동안 유지해온 ‘독재 권력’에 심각한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푸틴이 2000년 대통령에 당선됐을 당시 러시아 인구의 38%가 하루 5.50달러 미만으로 생활했지만 최근 이 비율은 3.7%까지 낮아진 바 있다.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경제학과 배리 이커스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1990년대의 혼란을 끝낸 이후 러시아 국민들은 그의 권력에 도전하지 않았지만 전쟁이 3주차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합의를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뉴시스

CNBC는 경제 붕괴의 신호로 루블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고,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러시아를 떠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루블화는 이미 외국에서 화폐로서의 가치를 상실했고, 러시아 중앙은행은 자국 내에서 루블화와 다른 외화 간 환전을 중단했다.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 대형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함으로써 자금의 해외 이동을 막고,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를 동결해버렸기 때문이다.

서방은 러시아산 원유·가스 수입도 중단하기로 했고, 첨단 기술 제품과 사치재의 대러시아 수출도 막혔다.

러시아 ‘디폴트’ 임박…루블화 가치 폭락

러시아가 1억1700만 달러(1450억원) 상당의 채권 이자 지급 만기일인 16일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달 안으로 달러화 표시 국채 이자 7억3000만 달러(약 9000억원)를 지급해야 한다. 앞으로 외화 국채 만기 시기가 도래할 때마다 디폴트 우려가 반복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 당국은 최근 서방 제재에 대응해 비우호국 채권자에 대해 채무를 루블화로 상환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는 계약에 어긋나 사실상 디폴트에 해당한다는 분석이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역시 합의된 통화가 아닌 다른 통화로 채무를 상환하는 것은 디폴트로 간주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디폴트에 빠지게 되면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당시 이후 최초다.

“러 시민, 의약품도 못 구해…중국산 짝퉁 판 칠 것”

골드만삭스 등 세계적 은행과 유명 회계법인, 스타벅스·맥도널드·포드·셸·비자카드 등 300여개 유명 브랜드도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이는 기업들이 러시아 내에서 자금 수급과 이동이 막힐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외신들은 풀이했다. 이들 기업은 침공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러시아로 복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제재와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인해 당분간 복귀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운용사 베어링스의 크리스토퍼 스마트 수석 글로벌전략가는 “아직 러시아 국민들이 서방 제재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의약품, 항공기 부품 등도 수입하지 못해 실질적인 충격이 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중국산 ‘짝퉁’ 자동차와 휴대전화를 많이 보유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