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파슨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위원장이 베이징 동계올림픽 폐회식 연설 중 언급한 ‘평화’에 대한 내용이 중국어로 통역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겨냥한 듯한 파슨스 위원장의 발언을 중국 당국이 통역을 핑계로 자체 검열한 셈이다.
14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파슨스 위원장이 13일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서 영어로 한 연설에서 ‘평화의 수호자’라는 표현이 관영 중앙방송(CCTV) 생중계의 동시통역 서비스에서 생략됐다. 또 ‘평화에 대한 희망’을 언급한 대목은 다른 중국어 표현으로 대체됐다.
15일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 역시 파슨스 회장이 ‘단합을 통해 우리는 포용과 화합, 평화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 CCTV 측이 일체의 통역이나 번역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파슨스 위원장은 폐회식에서 “평화의 횃불, 평화의 수호자로서 선수들의 행동은 말보다 더 울림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단합을 통해 우리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며 “포용에 대한 희망, 화합에 대한 희망, 무엇보다 평화에 대한 희망”이라고 언급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평화’를 강조한 대목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특히 이날 파슨스 회장은 패럴림픽에 참가한 각국 선수들을 가리켜 “희망의 등대이자 평화의 수호자”라고 평가했으나, ‘평화의 수호자’라는 내용은 어떠한 식으로도 통역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실린 폐회식 소개 글에도 파슨스 위원장 발언 중 올림픽의 성공을 칭찬한 내용은 포함됐지만 ‘평화’와 관련한 언급은 빠져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중국 매체들의 보도에서도 해당 연설 내용 중 ‘평화’ 언급에 대한 부분은 소개되지 않았다.
파슨스 회장의 발언이 중국 매체의 ‘검열’을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4일 파슨스 위원장의 개회식 연설도 중국 관영 CCTV 생중계에서 일부가 통역되지 않아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파슨스 위원장은 “다양성을 찬양하고 차이를 포용하는 조직의 리더로서,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충격적”이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에 CCTV는 이 대목에서 연설 음량을 작게 송출해 검열 논란을 불렀다. 중국 측 공식 통역 담당관 역시 실시간 통역을 중단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중국의 검열 논란이 뒤늦게 외부에 알려지자 국제패럴림픽위원회는 중국 관영매체 측에 해명을 요구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중계권을 독점한 미디어 담당자가 폐막식에서만큼은 이런 상황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