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한 사립여고에서 교사들의 욕설과 폭언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며 졸업생들이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학생들은 일부 교사의 이 같은 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뤄졌지만 동료 교사와 학교 측이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고 주장해 파장이 예상된다.
학생단체 제주학생인권조례TF팀과 사단법인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은 15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제주여고 올해 졸업생을 대상으로 지난 1월 27~30일 진행한 인권침해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에는 졸업생(347명)의 25%가 넘는 87명이 응답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중 57.5%가 학교생활 중 교사로부터 욕설과 비방 등 폭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학생들이 기술한 폭언 사례에는 ‘거지같은 년’ ‘닥치고 앉아서 공부나 해’ ‘xx년들 또 지랄이네’ ‘저런 애들은 나중에 술집에서 일한다’와 같은 욕설과 막말이 다수 포함됐다.
학생들은 또 ‘여학생들은 남학생보다 공부를 못한다’ ‘그냥 남자를 잘 만나, 그게 최고야’ ‘왜 이제야 상담하러 오는 거야, 전문대면서’ 등 성별이나 성적에 따른 비하 발언도 있었다고 적었다.
‘반 전체에 생활기록부 특정 항목을 안 써주겠다’고 하거나 ‘내가 너네 대학 다 떨어지게 물 떠놓고 빈다’ 등 성적이나 대입과 관련한 폭언을 들었다는 응답도 있었다.
한 학생은 “교무실에서 교사가 큰 목소리로 욕을 했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응답자의 10%는 ‘학교에서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상담 시 다리나 어깨를 쓰다듬었다는 대답이 많았다.
‘교사가 학생들의 개인정보(성적, 부모 등)를 유출해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했다’는 응답도 23%에 달했다. 학생 동의없이 석차와 성적을 공개적으로 발설하고, 내신 성적표를 반 단톡에 올린 경우, 자퇴 사유를 비밀로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무시한 경우 등이 사례로 제시됐다.
‘교사에 의한 물리적 체벌이나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8%가 그렇다고 했다. ‘학교에서 인격 모독, 비방, 성희롱 등을 당했을 때 항의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엔 80%가 없다고 했다.
또 ‘학교에 항의했을 때 학교 책임자의 반응은 어땠는가’라는 질문에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36%)가 가장 많았다.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는 응답은 6%였다. 한 학생은 교사로부터 ‘생활부는 신경 안 쓰냐며 참으라고 했다’고 기술했다.
제주학생인권조례TF팀과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은 “이번 조사 결과는 모두 학생들의 증언으로 사실일 개연성이 매우 크다”며 “폭언은 일부 교사들로부터 시작됐지만 교사들 사이에 이미 관성화됐다는 점, 여고 교사들의 성평등 인식이 낮다는 점,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적 권리가 학생들을 통제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점 등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항의에도 학교 측이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제주도교육청에 면밀한 조사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조사를 추진한 제주여고 졸업생 김채은씨는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다”며 “특정 교사들이 잘못했다가 아니라 이런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제주여고 측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극소수 일부 교사 때문에 상처받은 학생도 피해자이지만 아무 잘못 없이 열심히 살아온 선생님들도 피해자”라며 “보고서에 언급된 사안에 대해서는 자체 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확인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제주여고 인권침해 사안은 제주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지난해 제주도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가 설립된 이후 처음 공식 접수된 구제 신청 사례다. 도교육청은 조사 방식과 범위를 결정해 조만간 해당 학교에 대한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