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사이를 가르는 도나우 강은 잔잔해 그 위에 떠 있는 배는 흔들림조차 없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오후 3시가 가까워 오자 사람들이 하나, 둘 배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차량 등 화물을 운반하는 게 목적인 선박이라 객실은 따로 없었다. 사람들은 구석진 곳에 짐을 놓고 그 위에 앉거나 서 있었다. 이리나(50)씨도 승객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집이 있는 우크라이나 오데사로 가려고 배를 탔다고 했다.
루마니아 남동부 툴체아주(州) 이자체아의 작은 선착장에선 하루 7번 매 시간 한 번씩 배가 출발한다. 우크라이나 오데사주 오를리브카와 루마니아 이자체아만 오가는 배편만 있어 목적지도 종착지도 헷갈릴 필요가 없다. 루마니아 행과 우크라이나 행 마지막 배는 각각 오후 9시와 10시다.
이리나씨는 딸과 함께 러시아 침공을 피해 이자체아행 배를 타고 루마니아로 왔다가 홀로 귀갓길에 나섰다. 집에 남은 남편 때문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는 만 18세 이상, 60세 이하 남성은 국경을 나가지 못하는 총동원령을 내린 상태다.
이리나씨는 “폭격 소리를 듣고 피란길에 나섰지만 남편이 걱정돼 돌아가기로 했다”며 눈물을 짓더니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의 얘기에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우리 딸이 BTS 팬”이라고 말했다.
이리나씨가 탄 배는 구호품이 담긴 대형 트레일러, 개인 차량 등을 싣고 예정된 시간보다 9분 늦은 오후 3시 9분 출발해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거리는 가까웠다. 강 건너 우크라이나 땅이 선명히 보일 정도였다.
항구 관계자는 “거리가 1㎞의 절반이다. 500m”라고 말했다. 배 삯도 1인당 1유로, 우리 돈으로 1360원만 내면 됐다.
기자도 티켓을 구매했지만 외교부가 지난달 13일부로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대해 여행경보 4단계를 발령하면서 출발 전 배에서 내려야 했다. 한국 국민이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입국하면 행정제재 및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배가 출발하자 갑판 위에 오른 이리나씨의 시선은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그리고 10여분 만에 우크라이나 땅에 도착했다.
그러다 보니 최근 러시아군이 오데사 장악에 총력전을 펼치면서 이자체아로 국경을 넘는 피란민들도 늘어났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피란 행렬이 이어졌지만 이리나씨처럼 반대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조국에 남긴 가족이 걱정되기 때문이기도 했고 조국을 지키고 함께하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앞서 지난 10일 루마니아 북동부 수체아바주 시레트 국경에서 만난 30대 남성은 장모인 60대 여성과 함께 국경을 넘었다.
여성에게 국경을 넘지 못하는 젊은 남성이 함께 동행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우리 딸의 남편”이라는 말과 함께 눈물을 터뜨렸다. 여성은 “자신의 딸이 러시아 폭격으로 사망했다”며 “정부는 남겨진 아이를 위해 60세 이하 남성이라도 국경 통과를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성은 “장모님과 딸이 거처를 정하면 (나는) 다시 돌아간다. 우크라이나를 위해서”라는 말만 남기고 서둘러 난민 캠프로 가는 승합차에 올랐다. 이자체아(루마니아)=글·사진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