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세상을 떠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유고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열림원)가 출간됐다. 이 전 장관의 시집은 잠언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2008년)에 이어 두 번째다.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
시집 서문에 실린 이 세 문장은 지난 2월 22일 작성됐다. 이 전 장관이 영영 눈을 감기 4일 전이다. 출판사 열림원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생의 마지막 시간에 그동안 썼던 시들을 모아 정리했다. 그리고 전화로 서문을 불러주며 시집을 완성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 딸이 간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시집은 4부로 구성했다. 1부는 신, 2부는 어머니, 3부는 아이가 주제다. 마지막 4부는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딸 이민아 목사에 대한 시들로 채워졌다. 딸을 잃은 ‘아버지 이어령’의 고통과 고리움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 네가 돌아와 차고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네가 운전하며 달리던 가로수 길이 거기 있을까…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아침마다 작은 갯벌에 오던 바닷새들이 거기 있을까.”
헌팅턴비치는 생전에 딸이 지내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도시다. 이 전 장관은 딸에 대한 그리움을 거듭해서 고백한다. 저녁에 바람 부는 소리를 들으며 “너 정말 멀리 갔구나/ 추우면 돌아올 거지 다리 아프면 다시 올 거지”라고 혼자 묻고, 밥을 먹으면서도 “내가 살아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것이/ 미안하다 민아야/ 너무 미안하다”고 아파한다.
시집에는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추모시도 수록됐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