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중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는 우호국 중 유일한 강대국인 중국에 군사 장비까지 요청하며 협력 강화를 언급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이 러시아를 돕는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대러 제재에 국제사회가 광범위한 지지를 보이면서 중국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3일(현지시간) CNN, CBS, 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국이 러시아에 어떤 형태의 물질적, 경제적 지원을 하는 범위에 대해 자세히 주시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우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또 “어떤 나라가 경제 제재로 인한 러시아의 손실에 대해 보전해 주는 것을 좌시하거나 지켜보지 않겠다는 점을 중국에 전달했다”며 “제재 회피를 도우면 분명히 대가가 있을 것을 중국에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중국이 러시아를 도울 경우 제재할 것이냐는 질문에 “경제 제재를 받은 러시아에 생명선을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서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러시아가 중국에 군사 장비 및 경제 원조를 요청했다고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익명을 요청한 이 당국자는 정보원 노출을 이유로 러시아가 어떤 장비 등을 요청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주미 중국대사관 측은 이에 대해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중국의 최우선 과제는 우크라이나의 긴장 상황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부 장관은 로시야-1 TV 방송과 인터뷰에서 “(서방 제재로 인해) 외환보유액 6400억 달러 중 3000억 달러가량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서방 국가들이 러·중 간 거래를 제한하려고 중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보유외환 중 일부를 중국 통화인 위안으로 갖고 있는데, 서방이 이를 제한하려고 중국을 압박한다는 설명도 했다.
실루아노푸 장관은 “중국과 우리의 파트너 관계는 이미 달성한 협력을 유지하고, 서방 시장이 폐쇄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서방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자국과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는 의미다.
중국 속사정은 복잡하다. 지쿤 주 버크넬대 교수는 이날 더힐 기고에서 “중국이 내·외부 제약으로 인해 중재를 위한 주도적인 역할을 꺼린다”고 분석했다. 그는 외부적으로는 “미·중 관계가 악화한 상황이어서 중국은 깊이 관여할 의사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내부적으로는 “시진핑 주석이 올가을 20차 당 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 3선 연임을 확정할 예정”이라며 “혼란스러운 위기에서 중재가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고, 중재에서 실패하면 국내에서 위상만 훼손된다”고 설명했다. 섣불리 행동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왕휘야오 베이징 중국국제화정책연구센터 소장은 이날 NYT 기고를 통해 “압박이 가중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점점 더 극단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고 느껴 상황이 더욱 위험해질 것”이라며 “중국은 전쟁의 신속한 해결에 상당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 장기화는 중국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 만큼, 중국이 서방과 러시아 간 협상 중재자로 나설 유인이 있다는 것이다. 왕 소장은 중국 집단 지도체제 핵심인 국무위원회에 수년간 자문해왔다.
왕 소장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중국은 러시아와의 긴밀한 관계에서 수익이 감소하는 위치에 놓이게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제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개별 기업과 은행이 (유럽 등) 더욱 중요한 시장의 반발을 피하려고 러시아에 대한 개입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며 “러시아가 세계 경제로부터 고립되면서 중국은 러시아의 경제적 부담을 혼자 짊어지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왕 소장은 그러면서 “러시아가 보유한 식량 및 에너지 자원에 대한 중국의 수요,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대한 불만이 양국을 하나로 묶고 있다”며 “중국이 러시아와 서방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중립적인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웬디 셔면 국무부 부장관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러시아와 가까워졌지만, 우크라이나 주권 침해에 대해 꽤 불편해하는 것을 보고 있다. 중국은 매우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설리번 보좌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1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대해 논의한다.
백악관은 “양국 간 소통 채널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라며 “두 나라의 경쟁을 관리하기 위해 진행 중인 노력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역내와 국제 안보에 미치는 영향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