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발레단들, 우크라이나 무용수들에게 쉼터 제공

입력 2022-03-14 06:30
우크라이나 키이우 시티 발레단 단원들이 지난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샤틀레이 극장에서 열린 파리오페라발레단과의 합동 갈라 공연에서 우크라이나 국가(國歌)가 나오자 가슴에 손을 얹고 따라부르고 있다. 샤틀레이 극장 페이스북

지난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샤틀레이 극장. 우크라이나 키이우 시티 발레단과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합동 갈라 공연이 열렸다. 기립박수를 보내는 파리 관객 앞에서 키이우 시티 발레단 단원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날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자선공연이 끝난 후 키이우 시티 발레단은 파리 시 당국으로부터 샤틀레이 극장에 임시 거주할 수 있도록 허용받았다.

키이우 시티 발레단은 주로 투어를 전문으로 하는 우크라이나 단체다. 어린이 버전으로 만든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가지고 지난달 23일 파리에 왔던 키이우 시티 발레단 단원 30명은 다음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졸지에 난민이 됐다. 하지만 예정대로 낭트, 투르 등에서 공연을 한 뒤 파리로 돌아오는 투어 일정을 소화했다. 투어 내내 단원들이 무대에서 내려오면 바로 휴대전화로 가족의 안위를 확인하는 한편 전쟁 상황을 주시했음은 물론이다. 단원들은 우크라이나에 귀국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프랑스에 머물라는 가족의 바람에 따라 모두 난민으로 체류하는 것을 택했다.

키이우 시티 발레단의 예카테리나 코즐로바 부단장은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관대함을 보여준 프랑스에 감사하다.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견뎌낼 것이다”면서 “다만 키이우엔 아직 30명의 단원이 더 남아 있다. 이들이 안전하게 우리와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국립발레단 수석 발레리노 올렉시 포티옴킨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자원입대했다. 이 같은 사실은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 작가 나탈리아 안토노바가 트위터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안토노바 트위터 캡처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했을 때 프랑스에는 키이우 시티 발레단 외에 또 다른 우크라이나 발레단이 투어 중이었다. 지난 1월 3일부터 3월 2일까지 두 달간 ‘백조의 호수’를 가지고 공연하는 일정의 키이우 그랜드 발레단이다. 키이우 그랜드 발레단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귀국 대신 예정대로 투어를 진행했다. 키이우 그랜드 발레단은 파리오페라발레단의 홈그라운드인 가르니에 극장으로부터 임시 상주 제안을 받았는데, 우크라이나에 생후 6개월 된 딸을 놓고 온 부부 무용수만 귀국하고 나머지는 파리에 남기로 결정했다. 다만 키이우 발레단은 프랑스 투어 이후 이들을 돕기 위해 폴란드와 노르웨이에서 급하게 기획된 투어 공연을 다시 떠났다.

프랑스의 샤틀레이 극장과 가르니에 극장 그리고 파리오페라발레단 외에도 유럽 각국 극장과 발레단이 우크라이나 발레계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우크라이나 난민의 수가 20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갈 곳 없는 우크라이나 무용수들 중 일부는 다행히도 임시 거주지와 훈련 장소를 얻었다. 지난 9일자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폴란드 국립발레단은 우크라이나 무용수 30명에게 거주 공간을 제공하는 한편 발레 클래스에 참가하도록 했고,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국립오페라극장은 우크라이나 무용수 6명을 아예 고용했다. 또 헝가리 국립발레단과 체코 국립발레단도 우크라이나 무용수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당국과 협의중이라고 밝힌 상태다.

우크라이나는 구 소련의 영향으로 발레가 발달한 나라답게 수많은 무용수들을 배출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략으로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의 오페라극장처럼 파괴되는가 하면 극장이 모두 문을 닫으면서 적지 않은 무용수들이 유럽으로 탈출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무용수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유럽 각국 발레단에 오디션을 문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 국립발레단은 뉴욕타임즈에 “앞으로 우크라이나 무용수들이 더 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우리에겐 예산이나 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면서도 “조만간 우크라이나 무용수들 일부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고 연대의식을 피력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스타 발레리노 겸 프로듀서 이반 푸트로프와 루마니아 출신 스타 발레리나 알리나 코조가루는 오는 19일 런던 콜리세움 극장에서 동료 무용수들과 함께 '댄스 포 우크라이나' 공연을 연다. '댄스 포 우크라이나' 이미지 사진

영국 런던에서는 우크라이나 출신 스타 발레리노 겸 프로듀서 이반 푸트로프와 루마니아 출신 스타 발레리나 알리나 코조가루 주도로 자선 갈라 공연이 19일 콜리세움 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댄스 포 우크라이나’라는 타이틀의 이 공연에는 두 스타 무용수가 활동했던 영국 로열발레단을 비롯해 영국 국립발레단, 파리오페라발레단 소속 무용수들이 출연한다. 특히 러시아 출신으로 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인 나탈리아 오시포바가 함께 할 예정이다. 콜리세움 극장을 상주극장으로 사용하는 영국 국립발레단은 이번 자선공연을 위해 대관료를 받지 않으며, 출연 무용수들은 물론 다양한 관계자들 역시 재능기부 또는 자원봉사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 무용수들 가운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원 입대를 택한 경우도 있는데, 최소 2명이 확인됐다. 우크라이나 국립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노 올렉시 포티옴킨과 솔리스트 발레리나 레시야 보로티크다. 포티옴킨은 우크라이나에서 스타 무용수지만 러시아가 침공하자 바로 입대를 결정했고, 보로티크 역시 여성은 징집 대상이 아닌데도 입대해 총을 들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