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치실험’…청와대 아닌 ‘광화문 출근’ 약속 지킬까

입력 2022-03-14 05:30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안산문화광장 앞에서 열린 안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꿈은 ‘광화문 대통령’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이었던 지난 2월 1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대선 출정식에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 청와대 시대를 마무리하고 국민과 동행하는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광화문으로의 청와대 이전은 대선 레이스 내내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을 외쳤던 그가 처음으로 시도할 정치개혁이다. 그의 구상대로라면, 윤석열 시대에서는 ‘청와대’ 명칭도 사라진다.

그는 “임기 첫날(5월 10일)부터 광화문으로 출근하겠다”라고 밝히며 공약 이행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윤 당선인은 공약 이행을 위해 청와대TF(테스크 포스)팀 출범을 준비 중이다. 윤 당선인 인수위원회는 청와대 TF팀을 매머드급이 아닌 핵심 실무 인력 위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13일 “실무진 위주로 착실하게 진행 중”이라 밝혔다.

현재까지 TF팀은 청와대의 광화문 이전과 관련해 몇 가지 아이디어 안을 마련해 둔 상태로 전해졌다.

인수위 인선과 동시에 청와대 TF팀 구성원이 확정되면, 이 팀이 본격적으로 경호·비용 문제 등을 전담해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새 대통령 집무실로는 정부서울청사가 가장 유력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민이 키운 윤석열’ 출정식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 당선인은 청와대의 슬림화를 통한 ‘일하는 정부’를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윤 당선인은 청와대의 거대한 조직 구조를 먼저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으로는 수석비서관 폐지와 민정수석실 폐지, 제2부속실 폐지, 청와대 근무 인원 30% 감축을 제시했다.

일하는 사람만 남기고 불필요한 인원은 감축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윤 당선인은 국정 운영방식 대전환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대통령’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민간인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의 국정 운영 참여로 장막과 밀실을 없애겠다는 의도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실을 ‘정예화한 참모’, ‘분야별 민관합동위원회’, 이 두 축으로 운영하겠다고 공약했다.

공무원 및 민간의 최고 인재, 해외교포, 경륜 있는 중장년층, 패기 있는 젊은 인재 등 실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국정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이 국정에 참여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국정에 참여하는 민간인에 대한 윤리 감시체계를 마련해 보완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윤 당선인은 행정부를 보다 독립적으로 운영할 전망이다.

총리와 각 부처 장관들의 자율성과 책임성은 확대된다. 전문성과 식견이 있는 인재들에게 각 부처를 온전히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는 것이다.

낙하산 인사와 친분에 의한 인사는 철저히 배제하겠다고 강조했다. 각 부처 수장은 오로지 전문성과 실력으로만 기용하겠다는 다짐이다.

윤 당선인은 정치 개혁 방안인 동시에 지역 공약으로 세종 제2집무실 설치도 제안했다.

그는 지난 1월 22일 세종을 방문해 “국회 세종의사당이 차질 없이 개원되도록 하고, 청와대 제2집무실을 설치해 (세종시를)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영부인의 의전을 담당해온 청와대 제2부속실 폐지도 약속했다.

‘영부인’ 호칭 자체를 없애겠다고도 강조했다. 공약 발표 당시에는 선거 운동 내내 이어져 온 부인 김건희씨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로 해석됐다.

윤 당선인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은 그냥 대통령의 가족에 불과하고, 대통령 부인에 대해 법 바깥의 지위를 관행화시키는 것은 맞지 않는다”라고 영부인의 권한 축소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윤 당선인이 청와대를 국민에게 내놓겠다고 약속한 만큼 기존 부지가 어떤 용도로 활용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겠다는 윤 후보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더욱 열린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지난 1월 27일 “전문가와 국민 여론 수렴을 통해 (청와대의) 구체적 활용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제20대 대통령선거 하루 전인 지난 8일 제주시 일도1동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다만 윤 당선인이 제안한 정치 개혁을 2년간 실현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거대 야당과 맞서야 하는 여소야대 국면을 돌파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 당선인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듯 ‘협치’와 ‘국민통합’을 내세웠다.

윤 당선인은 지난 2월 22일 “김대중의 민주당, 노무현의 민주당에서 합리적으로 국정을 이끌었던 양식 있는 정치인들과 협치하겠다”고 말했다.

또 지난 1월 27일 정치개혁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여소야대 국면에서 식물정부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국정의 방향을 올바르게 잡고 훌륭한 인물을 (장관 등) 청문 대상에 제시했을 때, 그걸 거부했을 땐 180석이 아니라 200석을 갖고 있어도 국민들이 판단하실 것”이라 답했다.

윤 당선인은 이어 “최고 전문가와 최고 지성을 정부에 모신다고 누차 말씀드렸고, 지금 여당에도 우리 당과 합의하며 일할 수 있는 훌륭한 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윤 당선인이 전임 대통령들의 공수표로 전락했던 ‘광화문 대통령’을 실현할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대통령실 인원 감축, 수석 제도 폐지 등은 대통령령인 ‘대통령비서실 직제’ 개편만으로 가능하지만, 청와대 부지 이전은 경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등 난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2017년 대선에서 청와대 집무실 광화문 이전을 약속했으나 공약을 전면 백지화했다.

청와대 영빈관, 본관, 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 기능 대체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