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무작위 문자” 反푸틴 여론 끌어내는 해커들

입력 2022-03-13 16:41
국제 해커 집단 어나니머스의 상징 가면(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픽사베이 제공, AP뉴시스

국제 해커 집단 어나니머스의 대(對)러시아 사이버 전선이 민간 휴대전화로 확장됐다. 러시아 국민 휴대전화 번호 2000만건을 무작위로 추출해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식으로 반전(反戰) 여론을 부추기는 해킹 프로그램이 서방 세계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프로그램의 이름은 ‘스쿼드 303’.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에 맞선 영국 공군 내 폴란드 전투단 303중대에서 이름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홈페이지 주소에는 ‘1920’이라는 숫자가 들어간다. 폴란드가 옛 소련과 전쟁에서 승리했던 연도와 일치한다. 프로그램 이름과 홈페이지 주소에서 해커의 출신지를 폴란드로 추정할 수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12일(현지시간) “폴란드계 프로그래머들이 지난 6일 스쿼드 303을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어나니머스는 SNS를 구심점으로 세계에서 활동하는 해커 집단을 통칭하는 말이다. 기구나 단체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스쿼드 303은 러시아의 개인‧법인 명의 휴대전화 번호 2000만건, 이메일 주소 1억4000만건을 무작위로 추출해 이용자에게 안내한다. 다만 발송을 위해서는 프로그램 이용자의 휴대전화를 활용해야 한다. 발송 요금도 이용자 본인의 몫이다. 결국 프로그램 이용을 위해서는 로밍 메시지 요금은 물론, 자신의 번호를 노출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행 반전 메시지 발송 참여자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어나니머스는 지난 11일 “700만건 이상의 문자메시지가 러시아로 발송됐다”고 주장했다. 38세 미국인 타이탄 크로포드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지금까지 2000건의 문자메시지를 러시아로 발송했다”며 “러시아의 수신자 대다수가 회신하지 않았지만, 일부는 욕설 답장을 보내왔고 15명과는 소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쿼드 303은 러시아 국민이 메시지 내용을 알아볼 수 있도록 러시아어 문구도 제공한다. ‘푸틴의 전쟁은 러시아 국민에게 재앙을 몰고 왔다’ ‘크렘린궁은 거짓말하고 있다. 러시아 언론은 검열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1만명 넘는 러시아인이 목숨을 잃었다. 푸틴은 궁전에 숨었다. 지금 일어나라’ ‘아프가니스탄에서보다 많은 러시아인이 우크라이나에서 죽었다. 푸틴의 전쟁은 러시아를 파괴할 것이다’라는 문구 중 하나를 지정할 수 있다.

문자메시지를 받고 충격을 받은 러시아 국민의 반응도 전해졌다. 한 30대 러시아 여성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네덜란드인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 사진을 받고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한 20대 러시아 법대생은 “메시지를 받은 뒤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의견을 회신했다. 하지만 러시아 안에선 전쟁 반대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어렵다”고 월스트리트에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