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기술·통신·의료장비 등의 수출제한 조치를 본격 시행할 경우 우리 경제도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 유럽 등의 제재에 맞서 수출제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에 대비해 원자재와 에너지 공급망 안정성 강화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1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박진규 1차관 주재로 ‘제21차 산업자원안보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싼 동향을 공유하고 대응현황을 점검했다.
정부는 원자재 및 에너지 공급망 안정성 강화를 위해 총력 대응하고 필요한 경우 매점매석 금지, 긴급수급조정 등 시장 안정화 조치도 검토할 예정이다. 박 차관은 “정부는 전·후방 공급망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시장 상황을 고려해 필요한 경우 매점매석 금지, 합동 단속반 운영, 긴급수급조정 등 안정화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실물경제가 아직은 잘 버티고 있다는 진단과 함께 사태가 장기화하면 현장에서 각종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회의에는 자동차·조선·반도체·철강·가전·석유화학 등 산업별 협회, 석유공사·가스공사 등 에너지공기업, 무역협회·무역보험공사·코트라·전략물자관리원 등 유관기관이 참석했다.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로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에너지 관련 영향도 예상된다. 에너지 관련 수출입은 장기계약으로 이뤄지고 재고를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당장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고 있다. 문제는 유가다.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하면서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어서 이에 따른 대응이 필요할 전망이다.
공급망과 관련해선 각 기업이 선제적으로 재고를 확보하고 대체선 발굴에 노력해 주요 품목 수급이 아직까지는 원활하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이어지고 있어서 기업의 채산성 저하는 우려된다.
니켈 가격은 지난해 t당 1만8000달러에서 올해 1~3월 평균 3만4000달러로, 무연탄 가격은 지난해 t당 137달러에서 지난달 기준 249달러로 올랐다. 러시아가 특정 품목에 대한 수출금지와 제한조치를 본격 시행한다면 상황은 악화될 전망이다.
러시아 정부는 전날(현지시간)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회원국과 압하지야, 남오세티야를 제외한 모든 국가로 특정 품목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이에 포함됐다. 대상 품목은 기술장비, 통신장비, 의료장비, 차량, 농기계, 전기장비, 철도차량, 기관차, 컨테이너, 터빈, 가공 기계(금속 및 석재), 모니터, 프로젝터, 콘솔 등 200개 이상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러시아가 비우호국가로 지정한 48개국에는 특정 유형의 목재 수출까지 제한이 포함됐다. 이 조치는 오는 12월 31일까지 적용된다.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 발표될 예정이다.
지난 1∼9일 기준 우리나라의 대(對)우크라이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98.9%, 대러시아 수출은 6.6% 각각 줄었다. 러시아로의 수출에서 대금지급과 물류 관련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유관기관과 함께 수출입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추가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기로 했다. 피해기업 유동성 공급을 위해 금융위원회 긴급금융지원프로그램(2조원), 중소벤처기업부 긴급경영자금(2000억원), 무역진흥자금(무역협회 5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한다. 피해기업에 보험금 신속보상은 보상기간을 2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하고, 수출신용보증 무감액 연장 등도 제공한다.
지금까지 수출대금 미회수 보험사고는 총 75만달러 규모로 9건이 접수됐고, 보험금 신속보상을 위한 심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대러 수출기업의 리스크 분담을 위해 기존과 동일한 수준의 보험료·부보율(90% 이내)로 신규 무역보험 인수도 제공한다. 기존 거래선과 거래 단절 피해를 본 기업에는 대체 바이어 발굴 지원을 위한 긴급상담회를 무역협회 주최로 오는 31일 개최한다.
박 차관은 “사태가 장기화되고 격화되면서 주요국들의 제재조치와 위험요인이 더욱 다각화되고 있다”며 “업종별 협회를 중심으로 사재기 등 시장 교란행위 방지를 위해 협조해달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