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합의 결렬… 러 “요구 수용까지 우크라 공격”

입력 2022-03-10 21:59 수정 2022-03-10 22:19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이르핀에서 한 남성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파괴된 다리 위에 올라가 있다. AP뉴시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개전 이후 처음으로 고위급 회담이 열렸지만 휴전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러시아는 목적을 관철할 때까지 전쟁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양국 외교장관의 회담은 이견만 드러낸 채 진전 없이 종료됐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AFP 등에 따르면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터키 남부 안탈리아에서 회담했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이 디귿자 형태로 설치된 테이블 중간에 앉아 중재를 맡았다.

회담은 1시간 이상 진행됐지만 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한 24시간 휴전을 합의하지 못한 채 양측 입장만 되풀이하다 끝났다.

쿨레바 장관과 라브로프 장관은 3자 회담이 끝난 뒤 따로따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쿨레바 장관은 “이 사안을 놓고는 러시아에 다른 의사결정자가 있는 것 같다”며 “라브로프 장관은 휴전 문제를 논의할 권한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라브로프 장관의 기본적 입장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공격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쿨레바 장관은 다만 러시아와 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항복하지 않았고 항복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결사 항전 의지를 드러냈다.

쿨레바 장관은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이 보고된 마리우폴에서 민간인을 대피시키기 위한 인도주의 통로 설치 방안도 논의됐다고 전했다. 그는 “남부 마리우폴 항구의 상황이 가장 심각하지만, 러시아는 마리우폴에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 통로를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마리우폴은 10일째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다. 전기·수도·난방 공급이 끊긴 상태다.

라브로프 장관은 자국 안보를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우며 우크라이나가 먼저 러시아에 대한 안보 위험을 조성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이 아닌 자국 안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주장해왔다. 러시아 정부 측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 행위를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적 통로개방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 병원 공습 논란에 관해선 “급진 민족주의자들의 군사 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민간인 피해가 커지며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이 빗발치자 책임을 우크라이나 측에 돌린 것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유럽연합(EU) 등 서방 가가 위험하게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한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이 우크라이나 생물 실험실을 운영했다고 주장하며 “분노한다”고 말했다.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접촉을 절대 피한 적 없다. 우리는 말을 늘어놓기 위한 접촉은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부 대표단은 지난주부터 벨라루스에서 3차례 협상을 진행했지만,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양측은 4차 협상도 추진 중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즉각 휴전과 러시아군 철수를 촉구해 왔다. 반면 러시아는 군사행동 중단을 위한 핵심 요구사항으로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 주권 인정,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포기와 ‘탈나치화’, ‘비무장화’를 열거했다.

여기에 러시아가 독립을 인정한 동부 돈바스 도네츠크·루한스크 지역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추가했다. 이 가운데 비나치화란 사실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퇴진과 친러 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것이라 우크라이나 정부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