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병사들에게 어머니의 눈물은 서방 국가의 경제 제재보다 더 강한 힘으로 총구를 거두게 만들 수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9일(현지시간) “러시아 어머니들의 분노와 공포에 찬 목소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며 “그들은 푸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사자 수 공개 않는 러시아
러시아군 전사자 수는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았다. 러시아 국방부가 지난 3일 자국군 498명이 임무 수행 중 숨졌다고 밝힌 게 전부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5300명 이상의 러시아군을 사살했다고 반박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지난 7일 러시아 대표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의 내부고발이 담긴 문서를 인용해 러시아군 전사자가 1만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그중 명확히 확인된 주장은 없다. 미 국방부가 정찰 위성 등으로 러시아군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숫자를 공개하지 않았다.
서방 세계 언론들은 러시아 정부가 자국 군 사망자 수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놓고 “푸틴 대통령이 정치적 입지 약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1990년대 두 차례 펼친 체첸 전쟁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군 어머니 세대가 모두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 안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결국 전장에서 자녀를 잃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나왔다. 1989년 결성된 ‘병사의 어머니들’이 가장 대표적인 군 단체다.
이들은 체첸 전쟁 정부가 은폐했던 전쟁 사상자 실태를 알리고 포로가 되거나 실종 군인들을 찾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군 당국의 불법 징집 실태를 폭로하기도 했다. 단순히 자녀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의 부도덕성을 알려왔다. 교전 상대국인 체첸 어머니들과도 연대했다.
이 단체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서도 자녀의 행방을 찾는 부모들을 돕고 있다. ‘병사의 어머니들’ 대표인 스베틀라나 골룹은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전화를 받고 있다. 이 상황은 눈물의 바다와 같다”고 말했다.
러시아 안보 전문가인 마크 갤리오티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는 “병사의 어머니들은 자체로 전쟁을 끝낼 수는 없지만, 여론을 형성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며 “그들이 펼치는 순수한 풀뿌리 운동이야말로 이 전쟁이 러시아의 전쟁이 아니라 푸틴의 전쟁임을 일깨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리전 나선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내 여론 분열을 노린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군 피해 상황을 인터넷상으로 전파하며 사기를 꺾는데 주력하고 있다. “아들을 데려가라”며 포로를 공개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러시아군 전사자와 포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는 다친 러시아군 포로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24시간 올라오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의 이름은 ‘200rf’. 옛 소련이 전장에서 후송한 전사자 시신의 군 코드인 ‘카고 200’에서 응용한 이름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페이스북에 “아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제목의 글을 올리기도 한다. 이 게시물에는 러시아군으로 추정되는 남성과 함께 울고 있는 한 노년 여성의 모습이 합성된 사진이 첨부됐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어머니들이 우크라이나로 데리러 온다면 포로를 돌려주기로 결정했다”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파시스트인 푸틴과 다르게 포로가 된 당신의 아들과 싸우지 않는다. 우리는 키이우에서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아들을 되찾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온 러시아 어머니들을 위해 국경에서 키이우까지 호위를 제공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이 게시물에는 러시아군 포로의 생사를 확인할 핫라인 전화 번호도 적혀 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지난 8일 “러시아군 가족들을 위해 개설한 ‘포로·사상자 정보’ 핫라인에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러시아인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개전 이후 6000통 넘는 문의가 쏟아졌다”고 밝혔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