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남아인 K는 어느 날 부터인가 날아다니는 벌레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벌레와 관련된 아무런 사건이 없었음에도 파리만 보고도 무섭다고 난리를 친다. 특히 여름이 되면 생활하기가 불편할 정도다.
공포는 우리의 유전자에 내재된 반응인지라 특별한 트라우마 없이 ‘이유 없는 공포’가 생기기도 한다. 동물이 진화하면서 위험에 민감한 개체와 위험에 둔감한 개체가 있었다면 어떤 쪽이 살아남았겠는가?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이 있는 벌레의 위험을 빨리 감지해 도망가거나 대책을 세울 수 있었을 테니까? 사람도 위험에 민감한, 즉 불안이 높은 군이 그렇지 않은 군에 비해서 서바이벌이 용이했을 것이고, 개체수가 늘어왔을 것이다.
이처럼 불안감은 우리가 생존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우리가 무엇인가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이나, 학년이 높은 아이들은 공포감이나 불안을 부끄러워하여, 내색을 못하고 겉으로는 아닌 척하느라 혼자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에게는 그것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모도 그런 경험을 했었고 두려움이나 무서움, 불안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므로 창피해하거나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자. 지금 두렵다고 느끼는 것도 노력하면 결국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자.
누구나 있다고 해서 아이의 공포감을 무시하라는 건 아니다. 독이 없는 무해한 벌레를 무서워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더라도 아이에게는 엄청 고통스러운 일이니 그 심정을 받아주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의 공포감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거나 과잉반응하기 보다는 부모가 의연하고 담담하게 대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공포감에 대해서는 ‘노출 요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벌레가 나올만한 장소를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조금씩 익숙해지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해볼 기회를 갖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회피하기 보다는 부딪혀서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경험해 보아야 한다. 경험하지 않고 회피만 한다면 공포감이 점점 더 쌓여갈 뿐이다.
노출의 방법에는 아직 논란은 있지만 점진적인 노출이 더 효과적이라는 게 정설이다. 수위가 낮은 노출로 시작해서 점점 난이도를 높여가는 거다. 벌레의 그림이나 사진을 먼저 보고, 동영상으로 접하고, 공포를 덜 느끼는 벌레에서 시작해서 벌처럼 강한 공포를 유발하는 대상으로 넓혀간다. 멀리서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고, 부모와 함께 노출하는 것에서 차츰 혼자서도 시도해 본다. 처음엔 대상에 대한 공포감이 심할 수도 있으며, 어느 정도 시간까지는 공포감이 오히려 점점 강해질 수 있는데, 이럴 때 포기하지 않고 대처 할 수 있는 기술을 미리 연습해 보자.
복식호흡을 하면 부교감 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공포감이 줄어들 수 있으니 손을 배에 올려놓고 천천히 숨 쉬는 방법을 연습하거나, 편안한 장소를 상상하게 해본다. 스스로를 안정시킬 만한 말을 만들어 주자. ‘괜찮아, 그냥 작고 힘없는 벌레일 뿐이야, 나를 해칠 순 없어’ 등등의 자신의 문장을 만들어 중얼거리게 해보자. 때로는 벌레나 공포심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른 곳에 주의를 분산시켜 보기도 한다. 특히 시각, 청각 등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에 주의를 주어 ‘소파, 액자, 쿠션’등 주변에 보이는 물건의 이름을 불러보거나 ‘자동차 소리, 아이들 떠드는 소리’등 들리는 소리에 이름을 붙여보자. 이렇게 하면서 일단 노출에 성공했다면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회피하지 않았다면 듬뿍 칭찬을 해주고 필요하면 보상을 해주어도 좋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