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생화학 무기 사용 우려”…어린이·산부인과 병원까지 공격

입력 2022-03-10 08:39 수정 2022-03-10 12:44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백악관이 전망했다. 우크라이나의 아동·산부인과 병원 폭격, 피난민 공격 등에 이은 또 다른 전쟁 범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의 인도적 위기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며 러시아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9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러시아가 화학무기나 생물학무기 공격을 계획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키 대변인은 이고르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 6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 과정에서 미 국방부가 우크라이나의 군사 생물학 프로그램을 지원한 증거를 확인했다”고 주장한 사실을 언급하며 “러시아가 거짓 주장을 하고, 중국이 이를 지지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우크라이나와 다른 나라에서 수년간 반복적으로 목격한 일종의 허위정보작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화학 또는 생물학 무기를 사용하거나, 이를 사용해 ‘가짜 깃발’ 작전을 만들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이는 계획적이고 도발되지 않은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백한 패턴”이라며 “누구도 속아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사키 대변인은 “국제법을 위반하여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유지해 온 것은 러시아다. 화학무기를 반복 사용해 온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지지한 것도 러시아”라고 지적했다.

네드 프라인스 국무부 대변인도 “러시아는 의도적으로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우크라이나에서 생화학무기 활동을 하고 있다는 노골적인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 완전히 넌센스”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공격을 정당화하려는 명백한 책략”이라고 밝혔다.

미 고위당국자도 “전쟁이 확대될 수 있는 위험, 특히 러시아가 비 재래식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우리는 (생화학무기 사용 등에 대해) 우려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CNN은 “러시아가 전술핵이나 생화학무기 같은 비 재래식 무기를 우크라이나 시설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거나, 우크라이나가 먼저 사용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며 “이는 러시아의 비 재래식 무기 사용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CNN은 “러시아가 과거 시리아에서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때도 비슷한 말이 러시아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마리우폴의 아동·산부인과 병원을 공격해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도 거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마리우폴 병원 폭격 사실을 전하며 “이번 참사는 심각한 수준이다. 어린이들이 건물 잔해에 깔려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현재까지 이번 폭격으로 17명이 다쳤다고 파악했다.

사키 대변인은 “무고한 시민에게 가하는 야만적인 군사력 사용은 소름 끼친다”고 비난했다.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도 “러시아의 공습이 마리우폴의 산부인과·아동 병원을 파괴했다는 신뢰할 만한 보고로 인해 끔찍하고, 분노스럽고, 마음이 아팠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인도주의적 위기는 심각한 상황이다. 세르히 오를로프 마리우폴 부시장은 “러시아의 침공 후 현재까지 최소 1170명의 민간인이 숨졌다”며 “난방, 전기, 가스 공급이 모두 끊겼으며, 시민들은 눈을 녹여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공동묘지에 러시아군 공격으로 숨진 민간인들이 집단 매장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병원과 의료진, 구급차 등에 대한 공격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의료기관을 공격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현재까지 의료 시설과 시설 종사자, 구급차에 대한 공격 18건을 확인했다”며 “10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고”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과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잔인한 공격 계획을 갖고 있다”며 “그는 지금 황폐화 전략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피난민 등을 향한 러시아의 무자비한 폭격은 그들이 만든 지옥 같은 환경에서의 탈출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링컨 장관은 “푸틴 대통령은 실패할 것이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단기적으로 어떤 전술적 이득을 얻더라도 전략적 패배를 겪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투에서 이길 수 있더라도 전쟁에서 이기는 건 아니다”며 “도시를 빼앗을 수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을 수 없고,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매일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