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삶…‘살아있는 권력’과 맞서다 ‘권력 정점’ 오르다

입력 2022-03-10 04:37 수정 2022-03-10 05:13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21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21년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현관 앞. 당시 검찰총장직을 전격적으로 내던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나타났다.

그는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면서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라고 말했다. 검찰총장 퇴임사를 생략하고 대신 내놓은 발언이다.

윤 당선인은 또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랬던 그가 1년 하고 엿새 뒤, 제20대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됐다.

윤 당선인은 검사였던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댓글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하면서 ‘풍운아 삶’을 걷기 시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 정당성에 의구심을 던졌던 이 사건의 수사를 이끌면서 박근혜정부의 미움을 샀다.

이 사건은 윤 당선인이 ‘살아있는 권력’에 맞섰던 첫 사례가 됐다. 그는 댓글조작 수사 당시 검찰 수뇌부의 외압을 폭로한 뒤 한직을 전전했다.

정치권의 러브콜을 외면했던 윤 당선인이 정치 입문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던 때는 2020년 10월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였다.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그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국감장에서 “지금 윤석열 대통령 후보라는 말이 나온다. 정치할 것이냐”고 묻자 윤 당선인은 “제가 소임을 마치고 나면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은 천천히 한 번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그의 발언은 정치권에 거대한 폭풍을 일으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어린 시절 모습.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함께 서있다. 국민의힘 제공

유복했던 어린 시절, 9수만의 사시합격

윤 당선인의 어린 시절은 가난을 극복한 ‘성공 신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1960년 12월 18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정자 이화여대 교수 부부의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덕분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친 윤 교수는 충남 공주 출신이다. 윤 당선인이 대선 출마 선언과 함께 ‘충청대망론’을 앞세운 이유였다.

서울 충암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5·18민주화운동 직전 서울대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뒤 외가가 있던 강원도 강릉으로 석 달 동안 피신했다는 일화도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기까지는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대학교 4학년 재학 시절 이미 사법시험 1차를 합격했지만, 9수만인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최종합격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여주지청장이던 2013년 10월 21일 국정감사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의 국정원 댓글수사 외압 폭로는 윤 후보 인생의 큰 분기점이 됐다. 김지훈 기자

국정원 댓글수사,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1994년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늦깎이 검사’였다.

부산지검에서 근무하던 2002년 사표를 내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1년 만에 “검찰청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며 검찰에 복귀했다.

그는 특수통 검사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박근혜정부 초기였던 2013년 4월 국정원 댓글조작 의혹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으며 그의 인생은 격랑에 휩싸였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대선 승리를 목적으로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인터넷에 댓글을 단 사건이다.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대선 개입이 인정됐다.

윤 당선인은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윗선의 반대에도 용의선상에 오른 국정원 인사들을 체포했다.

검찰 수뇌부의 외압을 폭로했던 2013년 10월 21일 국정감사는 윤 당선인이 전국민들의 머리 속에 각인된 결정적 계기였다. “검찰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이때 나왔다.

이 일로 윤 당선인은 3개월의 징계를 받고 특별수사팀장 자리에서 경질됐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4년간 한직을 떠돌았다.

선후배 검사들은 자신들의 인사 불이익을 우려해 그를 멀리했다고 한다. 점심을 혼자 먹어야 할 만큼 외톨이였다고 전해진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검찰총장 임명장을 수여받은 뒤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칼잡이’의 귀환

2016년 12월, 윤 당선인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칼잡이’ 윤석열의 3년 만의 귀환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 수사를 맡아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 부회장을 구속시켰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탄생한 문재인정부에서 윤 당선인은 상승 가도를 달렸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했다. 윤 당선인은 전직보다 5기수나 낮았다.

그런 그를 검찰총장의 길목으로 가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한 것이다. 기수와 서열을 중시하는 검찰 인사의 관례를 벗어난 파격 인사였다. 윤 당선인은 이례적으로 취임식을 생략하고 업무에 돌입했다.

서울중앙지검장에 오른 윤 당선인은 적폐청산 수사에 속도를 냈다. 박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비자금 횡령 혐의를 수사하며 이 전 대통령까지 구속했다.

전대미문의 사법농단 사건 수사도 거침없었다. 헌정사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7월 그를 검찰총장으로 기용했다.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할 만큼 두터운 신임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한 자세로 임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윤 당선인은 “늘 원칙에 입각해 마음을 비우고 한발 한발 걸어 나가겠다”고 답했다.


‘조국 수사’로 문재인정부와 이별

윤 당선인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겨냥하며 또다시 살아있는 권력과 충돌했다.

윤 당선인이 이끌던 검찰은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자 조 전 장관과 그의 가족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전방위적인 수사를 펼쳤다.

조 전 장관 자택 전격 압수수색, 정경심씨 구속 등으로 윤 당선인은 문재인정부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권 인사들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배신했다”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윤석열 검찰’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사건 등을 파헤쳤다. 윤 당선인은 문재인정부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던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전격 사퇴한 뒤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윤성호 기자

‘추·윤 갈등’…“검찰총장은 법무장관 부하 아니다”

여권은 윤 당선인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2020년 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임명되면서 윤 당선인에 대한 압력은 최고조에 달했다.

추 장관은 두 차례의 검찰 고위 간부급 인사를 통해 윤 당선인 고립을 시도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측근들은 대부분 한직으로 밀려났고, 주요 보직은 추 당시 장관 측근들에게 돌아갔다. 검찰 간부 인사 과정에서 ‘검찰총장 패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윤 당선인의 최측근이었던 한동훈 검사장이 관련된 ‘검언유착 의혹’ 수사가 시작되자 추 전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 당선인을 수사에서 배제시켰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은 헌정 사상 두 번째였다.

침묵을 지키던 윤 당선인은 반격에 나섰다. 2020년 10월 22일 대검 국감은 윤 당선인의 ‘원맨쇼’였다.

여권의 파상공세를 홀로 받았던 윤 당선인은 거침없는 발언을 내놓았다. 당시 국감 생중계 시청률은 9.9%에 육박했다.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선택적으로 수사를 한다”는 공격엔 “선택적 의심”이라고 맞받아쳤다.

법무부에 대해 ‘중상모략’이라고 말한 데 대해 사과를 요구받자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단어”라고 응수했다.

추 당시 장관은 윤 당선인을 겨냥해 직무배제와 정직 처분을 내렸다. 윤 당선인도 정직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맞섰다.


“부패한 세력 집권 연장 막아야”…대선 출마 선언

윤 당선인은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26년간 몸담았던 검찰을 떠난 것이다.

윤 당선인은 별도의 퇴임식 없이 대검 청사 현관 앞에서 소감을 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는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의 표명 한 시간 만에 윤 당선인의 사의를 수용했다.
윤 당선인은 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한다”면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은 자신의 다짐대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