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무단 입국’ 이근, 사전죄 첫 처벌 사례 될까

입력 2022-03-09 20:40
이근 전 해군특수전전단 대위. 인스타그램 캡처

외교부가 우크라이나에 무단 입국한 이근 전 해군특수전전단 대위를 여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하는 것을 추진하면서 그에 대한 사전죄(私戰罪) 적용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형법은 선전포고나 전투명령이 없는데도 사인(私人)이 임의로 외국 정부를 상대로 전투행위를 하는 것을 사전죄로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전죄 위반 소지는 있지만 처벌 논의는 아직 이르다고 평가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입국이 확인된 이씨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의용군’으로 우크라이나를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게시물에서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출국하려 했으나, 한국 정부의 강한 반대를 느껴 마찰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과 달리 그는 외교 당국에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등에 관한 문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의 군 시절을 아는 한 지인은 9일 “(이씨는) 과거 부대 안에서도 트러블이 있었을 정도로 현장에서 뛰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이씨가 여권법을 위반했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외교부는 지난달 13일부터 우크라이나 전역에 ‘여행금지’를 뜻하는 여행경보 4단계(흑색경보)를 발령했다.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국에 입국할 경우 여권법 위반으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문제는 법제정 이후 적용 전례가 없는 사전죄로 이씨를 처벌할 수 있느냐다. 형법 제111조는 “외국에 대해 사전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수범뿐 아니라 예비 또는 음모한 자도 처벌대상이다. 단 실행에 이르기 전 자수하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한다. 앞서 2015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가입한 김모군에게 사전죄 처벌을 검토한 적이 있지만 그의 생사가 불분명해지면서 기소 단계까지 가지 않았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씨가 캐리어에 위험한 물건을 들고 가는 등 행위에 실질적 위험성이 있다고 하면 사전 예비행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참전 의사를 강하게 내비친 이씨의 소셜미디어 게시물 등도 혐의 입증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처벌 문제를 거론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게 중론이다. 구체적 행위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승 연구위원은 “현 단계에서 형사처벌을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이씨의 행동을 놓고 사후적으로 판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과거 비슷한 사례에서도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아 실질적으로 기소는 어려웠다”고 했다.

사전죄 적용 여부와 별개로 만약 이씨가 실제로 전투에 참여해 사람을 해치거나 폭발물을 사용할 경우 살인죄, 폭발물사용죄 등 국내법으로 처벌 될 수 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