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초강력 제재를 꺼냈지만 중국 태도에 따라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러 제재에 반대하는 중국이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구매를 늘리면 러시아가 받는 타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중국 기업이 대러 제재를 어길 경우 문을 닫게 할 수도 있다고 강력 경고했다.
중·러는 지난달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정상회담에서 에너지 동맹 수준의 가스·원유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과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는 매년 100억㎥의 천연가스 거래 계약을 맺었고, 러시아 국영 석유 업체인 로스네프티도 CNPC에 10년간 총 1억t의 원유를 공급하기로 했다. 중국은 지난해 약 5억1000만t의 원유를 수입했는데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러시아에서 들여온 물량이 많았다. 러시아의 최대 원유 수출국은 중국이다.
중국으로선 미국 등 서방 제재로 판로가 막힌 러시아산 에너지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각국의 원유 업체들은 이미 러시아산 구매를 대폭 줄이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해 미국의 제재를 받았을 때 러시아산 원유를 평균 국제 유가보다 싼 가격에 사들였던 전례가 있다. 중국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5.5% 안팎으로 제시했는데 이를 달성하려면 에너지 수급 안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만 중국도 대러 제재의 구멍으로 계속 거론되는 건 외교적으로 부담이 크다.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미국 등 서방과의 대결 구도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8일(현지시간) NYT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수출 통제 조치에 불복하는 중국 기업에 미국산 장비와 소프트웨어 공급을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사한 것이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의 권익을 해쳐서는 안 된다”며 “중국 기업과 개인의 합법적 권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중국은 유럽 국가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는 9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에 동참하면 대체 에너지원을 찾을 때까지 석탄 의존도가 높아져 기후 대응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타임스는 “탄소 배출 감축 공약을 지킬 수 있는지 시험에 직면할 나라는 서방 국가”라며 “그들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 때문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전 세계 탄소 배출량 감축에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