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폭등… 14년래 사상 최고치
서울 휘발윳값 2000원 근접
경제침체·물가상승발 ‘제3차 오일쇼크’ 우려
미국이 8일(현지시간) 러시아산 원유 수입금지를 선언하면서 1973년과 1979년 세계 경제를 강타한 오일쇼크를 잇는 ‘제3차 오일쇼크’가 발발할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수입 금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원유는 물론이고 천연가스, 석탄 등 에너지 일체가 수입 금지 대상에 올랐다. 미국 기업이 러시아 에너지 생산·수출 과정에 투자금을 대는 것도 전면 금지됐다.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차단되면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올라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공산이 크다. 실제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 대비 3.6%(4.30달러) 상승한 123.70달러에 마감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8월 이후 14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학계에서는 1년새 국제유가가 2배 급등하는 것을 경기침체 시작 신호로 본다. 지난해 3월초 WTI유가는 60달러가 채 안 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현 상황이 지속되면 연내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조기에 마무리되지 않고 장기화될 경우 급등한 국제유가는 연쇄적인 물가상승을 불러일으키며 제3차 오일쇼크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앞서 1973년(제1차 오일쇼크)에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며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에 나서 유가가 폭등했다. 1979년(제2차 오일쇼크)에는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해 전쟁이 터지며 유가가 올랐다. 이번에도 전쟁이 원인이지만 코로나19발 경기침체, 최근 몇 년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와 인플레이션, 에너지 물가 상승까지 겹치면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국면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 당시에 비해 국제 금융시장이 크게 성장했다는 점이 3차 오일쇼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최근 2년간 양적완화 기조가 이어지며 주식·채권·부동산 등 자산시장은 과열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 급등으로 인해 실물경제가 붕괴하면 금융시장은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경제는 이미 타격권에 들어섰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기준 서울 평균 휘발윳값은 1960원을 넘어섰다. 코스피는 3거래일 연속 폭락하며 2600선을 간신히 사수 중이고, 3%대 후반을 기록 중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이번 달 4%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현 상황이 30년 전 오일쇼크와는 다르다며 지나친 비관론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WSJ는 셰일가스 개발, 친환경 에너지 발전 등 영향으로 석유에 대한 세계 경제의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30년간 에너지 효율성도 크게 개선돼 미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1달러를 늘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양이 40% 이상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진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도 “전쟁 장기화, 유럽에 대한 러시아발 에너지 공급망 마비, 주요 산유국 증산 거부 등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당시 수준의 충격이 재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