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들어 국립창극단은 다채로운 창극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덕분에 창극은 노인들이나 보는 고리타분한 장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공연계의 핫한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새로운 창극을 위해 창작진을 구성할 때마다 국립창극단의 고민은 늘 작창가의 부족으로 귀결된다. 작창은 판소리 다섯 바탕을 기본으로 민요, 정가 등의 소리를 스토리와 캐릭터에 따라 전통 장단과 음계에 맞춰 새롭게 짜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작창을 만들 수 있는 작창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판소리, 민요, 무속음악, 타악까지 두루 섭렵한 전방위 국악인 한승석(54)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는 늘 섭외 영순위 작창가다. 한 교수는 앞서 국립창극단에서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과 콤비를 이뤄 ‘변강쇠 점 찍고 옹녀(2014년 초연)’와 ‘귀토(2021년 초연)’를 흥행시킨 바 있다. 오는 17~2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국립창극단 신작 ‘리어’에서 작창을 맡은 한 교수를 미리 만나봤다.
한승석이 ‘작창의 신’으로 불리는 이유
“작창은 매우 특수하고 전문적인 영역입니다. 작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노가바’, 즉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처럼 기존 다섯바탕에서 가사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만들면 작품의 분위기나 캐릭터에 맞지 않기 때문에 어색해서 들을 수가 없습니다.”
작창가는 판소리 다섯바탕을 비롯해 다양한 소리들을 알아야 대본과 캐릭터에 맞는 음과 박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립창극단 최고 인기 레퍼토리인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경우 판소리 열두바탕 가운데 사설만 남은 변강쇠 타령을 옹녀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작품이다. 작곡 및 작창을 담당한 한 교수는 다양한 음악을 자유자재로 활용했다. 옹녀가 변강쇠를 받아들이며 부르는 ‘사랑가’는 춘향이 사랑가의 사설을 가져왔지만, 전반부를 원작의 경쾌한 우조 대신 슬픈 계면조로 소리를 짜서 옹녀의 기구한 운명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런가 하면 가요인 최희준의 ‘하숙생’과 클래식 음악인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가 들어가기도 한다.
“작창은 기본적으로 소리꾼만이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텍스트의 속뜻을 담되 말맛을 살리면서 적확한 음정, 박자, 음색 등을 찾아내려면 다양한 음악을 알아야 좋은 창극을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 소리를 기본으로 새롭게 조합된 창극의 소리는 이전의 판소리와는 다릅니다.”
아무리 소문난 명창이라도 작창까지 잘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작창에 대한 한 교수의 자부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제로 국악계에서 그는 ‘작창의 신’, 제자들 사이에선 줄임말인 ‘작신’으로 불린다. 국악계 명인명창 2세대로 구성된 그룹 우리소리 바라지의 예술감독이자 그 자신이 명창인 것을 보면 ‘개비’, 즉 예인 집안 출신 같지만 그는 ‘비개비’다. 서울대 법대 입학 후 뒤늦게 국악을 시작한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국악계의 중심에 섰다. 다만 ‘민속문화의 보고’ 진도에서 자란 만큼 어릴 때부터 개비 못지않게 국악을 접한 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가 어릴 땐 진도의 집집마다 장구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어요. 대나무 깎아서 장구채도 많이 만들었죠. 또 우리 집 마당에서 김대례 선생님의 씻김굿이나 조공례 선생님의 입춤을 보고 자랐습니다.”
김대례(1935∼2011)·조공례(1925∼97) 선생은 모두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다. 흔히 ‘인간문화재’라고 불리는 이들과 같은 지역에 살며 그는 초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리고 신동으로 소문났던 그는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뒤 서울대 법대 87학번으로 입학했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선배 소개로 전통춤 동아리 ‘한사위’에 들어간 것이 그를 국악의 길로 이끌었다.
“동아리 안에 장구가 있어서 쳐봤는데, 몇 년 만에 채를 잡았어도 꽤 쳤던 것 같어요. 따로 배운 적 없어도 곁가락 같은 주법을 구사할 수 있었죠. 그게 계기가 돼서 국악에 계속 빠져들었고, 군대 제대 후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찾아가 김덕수, 이광수 선생님에게 사물놀이와 비나리 등을 배웠습니다.”
서울대 법대 출신에서 프로 국악인으로
그는 1994년 사물놀이패 ‘이광수와 노름마치’ 창단멤버로 프로 국악인의 삶을 시작했다. 판검사 아들을 기대했던 부모의 실망은 컸지만 국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당시 명창 임방울의 ‘수궁가’ 음반을 듣고 판소리에 매료된 그는 2년간 수천 번 반복해 들으며 판소리를 독학하기도 했다. 그리고 95년 1월 그의 판소리를 듣게 된 안숙선 명창의 제안으로 안 명창을 사사한 데 이어 또 다른 명창 성우향에게도 배웠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한국음악을 전공한 그는 2007년 ‘적벽가’를 시작으로 2012년 ‘춘향가’까지 1년에 한 바탕꼴로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완창했다. 그가 작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98년 국립창극단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남자 소리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제가 운 좋게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5년간 활동할 수 있었는데요. 당시 신인이라 작은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작품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때 작창이나 국악기 활용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가 본격적으로 국악 창작의 매력에 눈을 뜬 것은 2001년 국악계 스타 원일이 이끌던 창작타악그룹 푸리 3기 멤버로 참여하면서부터다. 푸리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전통적인 국악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해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겠다는 그의 희망은 점점 커졌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그는 14살 아래지만 ‘지음(知音)’ 정재일을 만났다. 최근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정재일은 국악, 록, 재즈, 클래식 등 장르를 아우르는 뮤지션이다. 두 사람은 지난 2014년 ‘바리 abandoned’, 2017년 ‘끝내 바다에’ 등 크로스오버 음반을 내기도 했다. 정재일은 한승석과 함께 국립창극단의 ‘리어’에도 참여했다. 한승석이 정서적인 색채를 담당하는 국악기와 작창을 맡고 이를 받쳐주는 반주 음악은 정재일이 디자인을 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재일이는 정말 천재적인 음악가에요. 푸리 시절 둘이 함께 작업하자고 의기투합했지만 첫 음반이 나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선 제가 다섯바탕 판소리를 다 배우고 완창까지 하느라 시간이 없었고, 재일이 역시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군대에 다녀오느라 늦어졌죠. 앞으로 3집 음반까지는 내고 싶은데, 아시다시피 요즘 재일이가 너무 바쁘잖아요.”
스타 극작가 고선웅 · 배삼식과 창극 작업
국립창극단에서 앞서 고선웅과 호흡을 맞춰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를 선보인 그는 이번에 ‘리어’에서는 배삼식과 손을 잡았다. 고선웅과 배삼식은 색깔이 다르지만 현재 국내 공연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양대 극작가다. 고선웅이 대중적이고 해학적이라면 배삼식은 관조적이면서 서정적이다. 작창가로서 두 작가와 작업할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
“두 작가는 정말 스타일이 달라요. 배삼식 작가와 창극으로는 이번에 처음 만났지만 지난 2008년 연극 ‘은세계’와 2014년 음반 ‘바리 abandoned’에서 함께 작업한 적 있어요. 기본적으로 배 작가의 대본은 텍스트에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창극이 음악극인 만큼 배 작가의 시적인 대사는 노래를 만들기가 쉽죠. 다만 이번 ‘리어’의 경우 함축적이고 심리 표현적인 장면에선 노래를 짜기 어려웠는데, 기존 창극을 벗어나 새로운 음악적 어법을 시도해 봤어요. 반면 고 작가는 텍스트가 많고 삐죽삐죽해서 기존 율격으로 작창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에요. 가사도 가벼운 구어체로 쓴 게 많고요. 하지만 고 작가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파격이 새로운 음악을 만들도록 자극합니다. 앞서 고 작가와 2번의 창극 공동작업은 과제를 푸는 것처럼 만만치 않았지만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었죠.”
국립창극단은 작창의 중요성에 주목해 올해 작창가를 발굴 및 육성하는 ‘작창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공모를 통해 지난 2월 합격자 4명을 선발한 상태다. 그는 안숙선, 이자람, 배삼식, 고선웅과 함께 멘토로 참여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창작 비결을 전수해 줄 계획이다. 그는 “젊은 소리꾼들 중에는 작곡 실력도 있고 컴퓨터음악까지 가능한 사례도 적지 않다”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작창가의 풀이 넓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