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포기하거나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숲에서, 들판에서, 해변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에서 화상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맞선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유명한 연설을 재현했다. BBC 방송 등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하늘에서 바다에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처칠 총리가 1940년 6월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에 고립돼 나치 독일군에 전멸당할 위기에 몰렸던 영국군과 프랑스군 수십만명의 철수 작전에 성공한 뒤 하원에서 했던 연설을 인용해 영국 의원과 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한 사람의 시민이자 커다란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꿈을 품고 여러분 앞에 섰다”고 밝힌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영국이 나치 독일에 맞선 2차 대전에 비유했다.
그는 “나치가 당신의 나라를 빼앗으려 할 때 당신은 나라를 잃고 싶지 않았고, 영국을 위해 싸워야 했다”며 우크라이나인들도 러시아군에 맞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를 가져와 우크라이나는 “살기(to be)”로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제재를 가한 영국의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우크라이나 영공에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재차 촉구했다.
아울러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러시아의 전쟁범죄 혐의를 조사하기로 하면서 우크라이나에 희망을 줬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살 수 있었던 아이들 15명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옆에 세워둔 채 국방색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화면에 나타났다. 그는 우크라이나어로 연설했고, 영국 의원들은 헤드셋으로 실시간 통역을 들었다.
하원을 가득 메운 여야 의원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이 시작되기 전 기립박수를 보냈다. 외국 정상이 영국 하원에서 연설을 한 건 젤렌스키 대통령이 사상 처음이다. 그간 외국 정상은 주로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연설했기 때문에 영국 언론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날 연설을 “역사적”이라고 표현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 이후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보여주고 있는 용기에 수백만명이 영감을 얻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영국과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고,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계속 압박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번 모험에 실패하고, 우크라이나가 다시 한번 자유로워질 때까지 영국은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