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러 석유 미국에 못 들어온다”… 초강력 제재

입력 2022-03-09 04:07 수정 2022-03-09 08:50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 금지 독자 제재에 나섰다. 러시아 경제의 ‘돈줄’을 틀어막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에너지 가격 인상과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정면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도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백악관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산 원유는 더는 미국 항구에서 받아들여 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푸틴의 전쟁’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일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이번 조처는 러시아의 전쟁 자금 확보 능력에 또 다른 강력한 타격”이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는 결코 푸틴의 승리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조처는 푸틴 대통령에게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지만 미국에서도 치러야 할 비용이 있을 것”이라며 “푸틴의 전쟁이 주유소를 찾는 미국의 가정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휘발유 가격이 이번 조처로 인해 추가로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격 상승을 ‘푸틴의 인상’으로 규정하고 에너지 기업들에 “이 상황에서 미국 소비자를 착취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유럽 동맹은 단계적 중단 조처로 방향을 정했다. 영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했고, 유럽연합(EU)도 올해 말까지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수입을 3분의 2로 줄이기로 했다. 대러 에너지 의존도를 줄인다는 장기적 목표에 동의했지만, 즉각적 조처는 미룬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대해 “많은 동맹이 동참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며 “푸틴을 압박한다는 목표에서는 단합돼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이 경제적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면서 러시아를 완전히 고립시키는 방법을 찾는 데 있어 절충안을 찾은 것으로 풀이했다.

미국의 수입 원유 중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다. 또 휘발유와 디젤 생산에 필요한 연료유 등 석유제품까지 포함할 경우 8%가량이다.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는 없다. 반면 유럽연합(EU)은 천연가스의 40%, 석유의 25%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그러나 러시아 석유 수입 금지로 인한 단기 영향이 심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운송비용 인상이 불가피하고,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경제 재개 상황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미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이날 갤런당 4.173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은 이에 따라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를 대체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경제 제재 완화, 이란과의 핵 합의(JCPOA) 타결 시 원유 수출 재개, 중동의 원유 증산, 미국 자체 증산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베네수엘라에 가했던 원유 수출금지 제재를 일정 부분 풀면서 석유를 수입해 부족분을 메우는 한편, 러시아의 동맹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로부터 러시아를 고립시키겠다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져 주목된다. 최근 백악관과 국무부 당국자들이 베네수엘라를 방문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처의 성과가 서방 동맹의 동참 속도에 달렸다고 봤다.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전쟁 지원금’이라고 부른 것도 제재 동참을 독려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에너지시장 정보 제공업체 ‘JTD 에너지 서비스 Pte’ 존 드리스콜 수석 전략가는 “한국, 일본 같은 다른 동맹이 수출 금지를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미 고위당국자는 “유럽 뿐만아니라 주요 7개국(G7), 동맹국을 포함한 모든 파트너와 이 조치에 대해 광범위하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 발표 직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129.44달러까지 올랐지만, 이후 다시 진정세를 되찾았다. 유럽이 즉각 조처에 나서지 않으면서 러시아 에너지 수입이 당장 크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다만 미국의 강력한 제재 조치로 에너지 기업들이 압박을 받고 있다. 이미 엑손 모바일, BP, 셸 등 에너지 대기업들은 지난주 러시아 사업에서 철수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셀은 러시아와의 원유 현물 구매를 중단하고 다른 거래도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이번 조처로 미국인들은 러시아 에너지 부문에 직접 투자할 수 없고, 러시아 에너지에 진출하는 해외 투자에도 참여할 수 없다.

엑손 모바일, 셰브론, BP, 셸 등을 회원사로 둔 미국석유연구소의 마이크 소머스 회장은 “석유업계는 수입 금지를 준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지지 입장을 밝혔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