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가디언 “한국 대선, 표 받으려 성차별 부추겨”

입력 2022-03-09 00:01 수정 2022-03-09 00:0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 사진)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연합뉴스

한국 대선에서 유력 후보 두 명이 고통받는 청년들의 표를 얻으려 성차별을 부추기고 있다고 BBC와 가디언 등 영국 매체들이 보도했다.

영국 BBC는 8일(현지시간) “젊은 여성의 고통이 이번 선거에서 전면적으로 무시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BBC는 “한국은 선진국 중 최악의 여성인권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의 초점이 된 것은 불만을 품은 청년들”이라고 지적했다.

가디언도 7일(현지시간) “선거운동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면서 양강 후보가 청년표를 얻기 위해 성차별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며 “두 후보가 젊은 남성 유권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매체는 이번 한국 대선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발)가 전면에 등장했다고 진단하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특히 가디언은 윤 후보의 해당 공약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이 대표를 여성할당제와 여성 친화 정책을 역차별이라고 비판해 온 하버드대 출신의 ‘남성 인권 옹호가’로 소개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열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choijh@kmib.co.kr

가디언은 또 “심지어 ‘자칭 페미니스트’인 문재인 대통령의 후계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남성에 대한 차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며 “이 후보는 페미니즘 편향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언론 인터뷰를 취소하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두 매체는 성별 임금 격차, 여성의 고위직 진출 비율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여성 인권 상황이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나쁜 수준이라고 짚었다.

가디언은 2021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의 젠더격차보고서를 인용해 한국의 성평등지수 순위는 156개국 중 102위라고 설명했다. 이 자료는 일자리, 교육, 보건, 정치 진출 등 분야에서 성별 간 차이를 지수로 산출한 자료다.

두 매체는 특히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가 3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하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19%에 그친 여성 국회의원 비율, 5%에 그친 기업 여성임원 비율 등도 여성 차별의 근거로 거론했다.

가디언은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기 어려운 한국 여성의 상황이 역대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드러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성범죄 처벌이 미약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BBC는 지난 10년간 성범죄자 가운데 28%만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성별분업 폐지와 성평등 세상 만들기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두 매체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페미니즘이 강력한 백래시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평등을 위한 운동으로 보지 않고, 역차별을 조장하며 남성의 일자리와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BBC는 특히 한국의 여성계가 불법 촬영물에 대한 제재를 끌어내고 잠재적 대권주자였던 고위 인사의 성범죄까지 폭로해 아시아의 ‘미투 운동’을 주도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BBC는 그러나 “당시의 ‘나도 당했다(Me Too)’라는 여성의 함성이 ‘내가 먼저다(Me First)’라는 남성의 외침에 묻히고 있다”고 진단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