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뛰어내린 여대생, 마지막 카톡서 “기사가 말 걸어도 무시해”

입력 2022-03-08 08:18 수정 2022-03-08 10:10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려 뒤따라오던 차량에 치여 숨진 대학생의 유족이 “사고는 누나 잘못이 아니다”는 주장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리면서 고인의 사망 전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스무살 우리 누나가 왜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려야만 했는지, 밝고 건강한 우리 누나의 죽음을 바로잡고 싶다”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숨진 대학생 A씨의 동생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지난 4일 저녁 누나는 포항역에서 택시에 탑승하고 대학 기숙사로 이동해 달라고 부탁했다”며 “택시기사는 다른 대학교 기숙사로 오인하고 이동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누나는 택시가 빠른 속도로 낯선 곳을 향해가고, 말 거는 시도에도 기사가 미동도 없자 남자친구에게 카카오톡으로 극도의 불안감을 전달했다”며 “누나는 본인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남자친구는 전화기로 ‘아저씨 세워주세요’라고 요청하는 누나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여전히 택시기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이전까지 언론 보도에는 경찰이 확인한 내용을 바탕으로 택시기사가 목적지를 잘못 알아들었다는 내용까지만 포함돼 있었다. 택시기사가 A씨의 요청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는 주장은 국민 청원글로 처음 드러났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원인은 “어둡고 낯선 길에 빠르게 달리는 택시 안에서 누나는 극도의 공포감과 생명의 위협을 느껴 차에서 뛰어내리는 선택을 했고 의식이 있는 상태로 뒤따라오는 차량과 충돌해 사망했다”면서 A씨가 택시 탑승 후 남자친구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캡처 사진을 공개했다.

카카오톡 대화에는 택시를 탄 지 4분쯤 지났을 무렵 A씨는 남자친구에게 “택시가 이상한 데로 가”라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남자친구가 “어디로?”라고 묻자 A씨는 “나 무서워. 어떡해. 엄청 빨리 달려”라고 했다. 또 “내가 말 걸었는데 무시해”라고도 했다.

불안감을 느낀 A씨는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청원 글에 따르면 남자친구는 A씨가 택시기사에게 “아저씨 세워주세요. 아저씨 세워주세요”라고 요청하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택시기사 응답은 들리지 않았고, 남자친구는 A씨에게 “기사를 바꿔 달라”고 말했다. 몇 초 뒤 ‘쿵’ 하는 소리가 들린 뒤 연락이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남자친구는 계속 A씨를 부르며 “그쪽으로 갈 테니 위치라도 말해줘” “경찰에 신고할게” 등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더 이상 답장은 없었다.

청원인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인과관계가 생략돼 우리 누나가 왜 그런 무서운 선택을 했는지 사람들은 함부로 상상하고 이야기한다”며 “사고가 누나의 잘못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누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청원글을 작성한다”고 밝혔다.

이날 포항북부경찰서에 따르면 4일 오후 8시45분쯤 택시기사는 A씨가 요청한 대학 기숙사가 아닌 다른 대학 기숙사로 알아듣고 그곳으로 향했다. A씨는 택시가 다른 곳으로 향하자 택시기사에게 행선지를 물으며 “차에서 내려도 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택시기사는 “갑니다”라고 말한 뒤 계속 다른 방향으로 운전했다.

이후 A씨는 차 문을 열고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렸다. A씨는 뒤따라오던 차량에 치여 긴급출동한 119구조대에 의해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택시 안에 설치된 블랙박스에 택시기사가 목적지를 잘못 알아듣고 대답하는 내용이 녹음돼 있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택시기사와 A씨, A씨 남자친구 간 의사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는지 등의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블랙박스 영상 분석을 도로교통공단에 의뢰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