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함 지침 ‘말 안돼’ 탄식 나왔었다” 공무원의 청원

입력 2022-03-07 18:38
투표소 측 실수로 잘못 배부된 투표용지.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격리자를 대상으로 한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에서 부실관리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당시 선거 사무원으로 일했다는 한 지방직 공무원이 직접 국민청원을 올리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책임자 처벌과 업무 체계 개편을 촉구하고 나섰다.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온라인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동 행정복지센터에 근무한다고 자신을 밝힌 청원인 A씨는 지난 5일 “선관위 졸속행정에 대한 책임자 중징계 및 선거 업무체계에 대한 전면 개편을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지난 4~5일 사전투표 양일간 선거사무원으로 일했고, 오는 9일 본투표 날에도 선거 사무원으로 일할 예정이라면서 “선거를 수행하는 실무자이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선관위의 업무 처리방식과 태도에 대해 크게 분노했고, 이에 대한 공론화와 책임 촉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지침 확인한 순간 ‘말 되나’ 탄식 터져나와…항의 있었을 것”

선관위가 비치한 확진자용 투표용지 수거박스. 연합뉴스

A씨는 “확진자 투표소에 투표함을 따로 둘 수 없기 때문에 기표가 된 투표용지를 사무원이 받아 비확진·격리자 유권자 투표소의 투표함에 전달하게끔 선관위 지침이 내려왔다”면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처음 지시를 확인한 순간부터 이게 말이 되냐면서 탄식이 터져 나왔고, 실제 여러 지자체에서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항의를 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기표용지가 비닐봉지에 보관되었건 번지르르한 플라스틱 상자에 보관되었건,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 결과를 직접 투표함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이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접선거와 비밀선거의 원칙을 명백하게 거스르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A씨는 또 당시 투표용지 발급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전투표에서 투표용지를 발급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지문 또는 서명을 입력하는 절차가 있다”며 “그러나 실제 확진자 투표가 진행될 때에는 이를 모두 무시하고 사무원이 대리 입력 후 투표용지를 발급했다”고 주장했다.

선관위, 지자체에 실질적인 모든 업무 떠넘겨

사전투표소에 줄선 확진·격리자. 연합뉴스

A씨는 선관위가 선거 사무 업무를 지방자치단체에 업무를 떠넘기고 있다면서 특히 사전투표 관련 명확한 세부지침이 없어 벌어진 혼란상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신분증명서 발급에 무조건 협조하라는 공문을 보내 일선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라텍스 장갑을 배부해 논란이 되자 사용만 금지하고 대안은 제시하지 않은 일 등이다.

A씨는 “이렇듯 선관위는 실제 투표사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투표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없다”면서 “제가 근무한 투표소를 기준으로 고작 6인분의 방역 장비와 방역수당이 지급됐으며 이 인원이 100명이 넘는 확진·격리자를 통제하고 욕받이가 돼야 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현장 인력의 부족은 비용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해도 이례적인 방법으로 투표가 이루어진다면 현장에 나와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고 바로 판단을 내려 시정조치를 해주어야 하는데 끝까지 무신경한 태도로 일축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의 청원글은 지난 6일 오후 사전 동의 100명 요건을 충족, 정식 공개 여부 검토를 위해 비공개 처리된 상태다.

이예솔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