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한목소리로 규탄하며 제재를 가하는 상황에서도 중국은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또 한반도 문제의 근본 원인은 북한이 직면한 안보 위협이 해소되지 않은 데 있다며 미국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7일 베이징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계기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서방의 제재 압박이 중·러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국제 정세가 아무리 험악해도 양측은 포괄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끊임없이 전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왕 부장은 이어 “중·러 관계 발전은 분명한 역사 논리와 강력한 원동력을 갖고 있으며 양국 국민의 우의는 반석처럼 견고하고 협력 전망이 매우 넓다”고 평가했다. 또 “중·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가장 중요한 이웃이자 전략적 파트너”라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은 냉정과 이성이지 불난 집에 부채질하며 갈등을 격화시키는 것이 아니다”며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인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금융 제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왕 부장은 북핵 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중국에는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며 “한반도 문제의 뿌리는 북한이 직면한 외부의 안보 위협이 장기간 해소되지 않고 북한의 합리적 안보 관심사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데 있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이어 “북한은 2018년 이후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음에도 지금까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했다”며 “이는 각측이 이미 공감대를 형성한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이 2018년 6·12 북·미 정상회담 전 풍계리 핵실험장을 공개 폭파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를 밝혔음에도 미국이 제재 완화 등 북한이 원하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북·미간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미국의 각종 대화 제의도 공허한 구호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왕 부장은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적개심을 갖지 않고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점에 주목한다”면서도 “다음 단계는 미국이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내놓을지 아니면 지연 전략을 계속 펴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미국에 공을 넘겼다.
중국은 그간 북핵 문제 해결 원칙으로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체제 동시 협상)과 단계적·동시적 행동을 제시해왔다. 북한은 올해 들어서만 탄도미사일 발사 등 9번의 무력시위를 벌였지만 왕 부장은 이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