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 속 말씀 그대로의 사역이 펼쳐지고 있어요. 거기에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 더하며 위로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 뿐입니다.”(정사라 우크라이나 선교사)
우크라이나 키이우(키예프)에서 30년째 사역해 온 정광섭(63) 정사라(61) 선교사 부부에게 최근 20여일은 그 어느때보다 성경 속 사역 장면에 가까운 나날들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 16일 사역지인 키이우로부터 약 800km 떨어진 도시 우즈호로드로 떠나왔다. 슬로바키아 국경에 인접한 도시다.
“미국 시민권이 있었기에 이곳에 남아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도울 수 있었어요. 로마 시민권이 사도 바울의 고대 로마 선교 사역을 가능하게 했던 것처럼요.”
지난달 13일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여행경보 4단계가 발령되면서 한국인 선교사들이 자의와 무관하게 철수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어 사역이 가능했다. 부부가 이끌고 있는 키예프연합교회 구호팀은 국경을 넘기 위해 기나긴 줄을 서야하는 난민들과 임시 예배처소를 찾는 이들에게 식료품 생필품 등으로 구성된 긴급구호 패키지를 전달하고 있다.
정 선교사는 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우즈호로드는 산악지역이라 같은 영하권이라고 해도 체감 온도가 훨씬 낮아 추위로 고생하는 난민들이 많다”며 “이들을 위해 마련한 숙소에 매트리스와 침낭이 더 필요해 사방으로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지원이 가능했던 건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단장 조현삼 목사)을 비롯해 크고 작은 한국교회의 긴급구호 헌금 덕분이다. 봉사단 측은 이번 사태가 촉발된 직후부터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주변국 선교사들과 발빠르게 소통하며 현지 상황에 따라 난민 지원사역이 시급한 지역에 구호를 위한 재정을 후원해오고 있다.
일순간에 생과 사가 오가는 전쟁터. 돕는 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도 심장이 잔뜩 위축돼 있고 마음은 매 순간 분주하다. 하지만 국경을 통과해 인근 국가로 향하는 과정은 더디기만하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총동원령이 내려지면서 18~60세 사이의 남성은 출국이 금지됐고 검문 검색, 이민국 수속 등에 길게는 5일 이상이 걸릴 만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정 선교사는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가 국경에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전쟁터로 다시 향하는 남자들이 여전히 많은데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일부터는 우즈호로드 국경 기차역에서 슬로바키아와 헝가리로 피난길에 오른 이들에게 식료품 팩을 전달하고 커피와 차를 나눠주고 있다. 정 선교사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난민으로 뒤엉켜 기차역은 그야말로 전쟁통이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물과 음식을 건네며 주고 받는 위로에 눈물 바다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새벽부터 준비하는 사역이 저녁까지 이어지면서 성도들의 피로도가 누적됐지만 하나 같이 ‘멈추지 말아야 할 사역’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어서 오늘도 힘을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난민들이 늘어나는 만큼 현지교회와의 협력도 확장되고 있다. 키이우를 떠나 합류한 키예프연합교회 성도들 30여명이 그룹을 나눠 식사준비, 장보기, 물품전달, 숙소마련 등의 사역을 맡고 있다. 최근엔 현지 교회 목회자들과 소통하며 수양관을 확보해 난민들이 머무를 숙소를 마련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난민 지원 사역에도 시시각각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다. 마트와 재래시장에는 구할 수 있는 식료품과 비상약 등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정 선교사는 “우크라이나 내에서의 공급은 줄고 생필품이 소진되는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인근 국가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와 협력해 그 나라에서 구입한 물건을 트럭에 실어 보내면 구호물품을 받아서 난민들에게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서는 구호를 위한 출입국 증서 확보가 급선무다. 증서 없이 20여시간씩 걸려 국경을 오가며 사역하기엔 효율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 선교사는 “유엔난민기구(UNHCR)측에 서류 발급 요청을 해뒀는데 아직 답변이 오지 않았다”며 “국제구호기구와의 협력 방안을 찾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구호물품과 이를 준비하기 위한 재정도 필요하지만 가장 절실한 건 난민과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한 기도라고 했다. “상처입은 이들을 위한 사역이 멈추지 않도록 도움의 손길이 이 땅에 끝없이 흘려보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크라이나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